연화의 손가락 두 개를 묻은 작은 묘 옆에, 청계촌 사람들은 사망자를 위한 무덤 열네 기를 팠다.
어른 열 명, 아이 셋,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수습하지 못해 이름만 적은 나무패 둘. 죽은 이는 모두 열다섯이었다. 진철의 부모는 같은 관과 한 무덤에 누웠다. 대장간 터에서 건진 뼛조각을 어느 쪽이 누구의 것인지 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철은 오른팔을 목에 매단 채 삽을 들었다. 화상에 붙은 천이 움직일 때마다 살이 뜯겼다. 마을 사람들이 말렸지만 그는 왼손으로 흙을 퍼 올렸다. 관 위에 흙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를 열네 번 듣고 나서야 삽을 놓았다.
연화는 무덤 곁에 앉지 않았다. 왼손에 두툼한 약천을 감고, 오른손으로 쌀독과 사람 수를 세었다.
“오늘 저녁은 서른두 명.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일곱, 젖먹이가 둘. 남은 쌀이 아홉 말이니 죽으로 끓이면 열하루야.”
“오늘은 장례 날이다.” 진철이 말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 따라 굶을 거야?”
연화는 그를 보지 않고 숫자를 다시 적었다. 먹을 갈 힘이 없어 숯 조각으로 헝겊에 썼다. 약지와 소지가 있던 자리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진철은 품속의 금 주머니를 만졌다. 그것을 꺼낼 때마다 남궁태의 목소리가 따라 나왔다. 집을 다시 짓고도 남을 게다.
“저건 쓰지 마.”
“그러면 쌀은?”
“내가 벌어 올게.”
연화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팔 하나로, 열하루 안에, 서른두 명 몫을?”
진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피해자 여덟 명의 손도장을 받은 고소장을 품고 읍성 관아로 갔다. 오른팔의 열은 내리지 않았고 걸을 때마다 등에 난 물집이 옷에 붙었다.
형방 서리는 위소현과 남궁태의 이름을 보자 방문부터 닫았다.
“무림인의 비무는 무림맹 연락소 소관이다.”
“죽은 사람들은 무림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관아가 무림인을 잡아다 세울 수도 없지.”
고소장이 되밀려 왔다. 종이 끝이 진철의 붕대에 걸려 구겨졌다.
무림맹 연락소는 관아 담장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칼을 찬 무사가 문을 지켰고, 안에서는 향내가 났다. 담당자는 진철이 가져온 종이보다 먼저 남궁의 금 주머니를 확인했다.
“배상은 이미 이뤄졌군.”
“누가 합의했습니까?”
“남궁 대협께서 자발적으로 금 이십 냥을 지급하셨다. 화산검성께서도 유감을 표했고. 이 정도면 맹의 관례보다 후한 처사야.”
붓끝이 장부 위를 미끄러졌다. 담당자는 ‘민가 훼손 십일 채, 사망 십오, 배상 충분’이라 적었다.
“사람 열다섯과 집 열한 채가 왜 한 줄입니까?”
“피해를 적는 칸이니까.”
“죽은 아이와 무너진 외양간도 같은 칸에 씁니까?”
담당자가 붓을 내려놓았다.
“젊은이, 네 심정은 안다. 하지만 정도의 두 기둥께서 악의를 품고 그랬겠나? 두 분은 마교가 내려오면 너희 같은 백성을 지킬 분들이다.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작은 흠이 생길 수도 있어.”
진철은 장부를 빼앗고 싶었다. 왼손이 책상 끝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칼집 끝으로 그의 손등을 누르는 문지기의 동작이 더 빨랐다. 힘을 조금만 주었는데도 뼈가 갈리는 듯했다.
“나가라.”
거리로 밀려난 진철은 한참 동안 관아와 연락소 사이에 서 있었다. 양쪽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같은 도랑으로 흘렀다. 서로 다른 문패를 달았을 뿐, 청계촌으로 내려오는 답은 하나였다. 아무도 벌하지 않는다.
그날 밤 진철은 금 주머니를 들고 강가로 갔다. 입구를 풀어 물 위에 기울였다.
“던지면 속이 편해져?”
연화가 뒤에서 물었다. 붕대를 바꾼 왼손을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이걸 쓸 때마다 그자들이 값을 제대로 치렀다고 믿을 거야.”
“그자들 믿음까지 네가 관리해?”
“이건 사람값이야.”
“아니. 금은 금값밖에 없어.”
연화는 그의 손에서 주머니를 빼앗았다. 한 닢을 꺼내 이로 깨물지도, 빛에 비춰 보지도 않았다. 손바닥에 올려 무게만 가늠했다.
“쌀 두 섬. 약재 스무 첩. 겨울까지 쓸 지붕 짚. 금이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야. 죽은 사람 하나도 못 사.”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도 서른두 명이 먹어야 해.”
연화는 숯으로 쓴 헝겊을 펼쳤다. 첫 줄에는 죽은 이들의 이름이, 다음 줄에는 다친 부위가, 그 아래에는 잃은 집과 밭이 따로 적혀 있었다.
“목숨과 물건을 같은 칸에 넣지 않겠어. 받은 금도 누구 몫이라고 나누지 않고 공동으로 쓸 거야. 한 푼 쓸 때마다 어디에 썼는지 남기고.”
“그 돈을 받는 순간 끝난 일이 돼.”
“우리가 버리면 더 빨리 끝나. 화낼 힘이 있으면 쌀부터 사. 내일 약도 받아 와야 해.”
진철은 연화의 붕대 끝에 번진 피를 보았다. 자신은 아직 불탄 대장간 앞에 서 있는데, 연화는 남은 서른두 명의 내일을 셈하고 있었다.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여자가 그보다 먼저 폐허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강에서 거두었다.
공동금 앞에서는 산 사람끼리도 갈렸다. 아들을 잃은 주막 주인은 열다섯 몫으로 나누자 했고, 집을 잃은 이는 그러면 겨울 전에 얼어 죽는다고 맞섰다.
연화는 빈 장부를 폈다.
“누구 슬픔이 더 큰지는 재지 않겠습니다. 지금 안 하면 또 사람이 죽는 일, 쌀과 약과 지붕에만 먼저 씁시다.”
“금이 떨어지면?”
“다 같이 가난해지는 거죠. 누구 아들값을 먼저 썼다는 싸움은 안 남기고.”
열한 사람이 손도장을 찍었다. 반대한 두 사람에게도 쌀과 약은 돌아갔다. 첫 금 한 냥은 쌀, 두 번째는 의원 몫이 됐다. 장부 맨 앞에는 ‘남궁태가 두고 간 금 이십 냥. 합의금이 아니며 청계촌 공동 생존금으로 보관한다’고 적혔다.
그날 밤 연화는 얻어 온 삼베 끝을 베틀에 걸었다. 왼손으로 날실 두 올을 가르려 했으나 남은 세 손가락이 실을 한꺼번에 밀었다. 북이 중간에서 걸렸다. 다시 해도 같았다.
진철이 손을 내밀자 연화가 북으로 손등을 쳤다.
“내 손이 모자란 거지, 네 손이 남는 게 아니야.”
그녀는 한참 발밑의 베틀 다리를 보다가 숯으로 바닥에 선을 그었다. 발로 밟으면 날실이 벌어지는 지렛대, 오른손만 오갈 북. 첫 그림은 비뚤었지만 연화는 지우지 않았다. 발끝으로 그 선을 세 번 밟아 보았다.
“다음 베틀은 손 말고 발이 일하게 만들 거야.”
진철이 숯 선 위에 발을 올리자 연화가 북을 들었다.
“그 발도 네가 빌려줄 셈이야?”
진철은 발을 뺐다.
돈을 쓰기 시작하자 진철도 움직였다. 화상이 덜 아문 팔로 망치를 들 수는 없었지만, 폐허에서 쓸 만한 쇠를 골라냈다. 불에 무른 것, 충격으로 속이 갈라진 것, 다시 달구면 쓸 수 있는 것을 나눴다.
부모의 유골을 찾던 자리에서는 못 세 개가 나왔다. 들보와 함께 녹아 검은 뼛조각에 붙어 있었다. 진철은 그것을 떼어 내지 못하고 한참 앉아 있었다. 결국 작은 정으로 재를 털어 냈다. 못마다 불을 받은 정도가 달랐다. 하나는 머리가 납작해졌고, 하나는 몸통이 휘었으며, 마지막 것은 끝이 녹아 서로 다른 소리를 냈다.
그는 세 개를 천에 싸서 품었다. 무덤에 묻으면 마음은 편할지 몰랐다. 그러나 편안함보다 증거가 필요했다.
진철은 폐허의 낫과 솥, 문고리가 휜 방향을 재고 연화는 장부 여백에 옮겼다. 첫날부터 한 방향이 보였다. 너무 빨리 보여서 틀렸다. 폭발에 날아갔다고 표시한 부엌칼은 주인이 아이의 밧줄을 자르다 놓친 것이었다.
“쇠는 거짓말하지 않아.” 진철이 말했다.
“사람이 쇠 대신 거짓말해 줄 수는 있지. 네가 잘못 읽을 수도 있고.”
두 사람은 생존자 증언을 다시 붙였다. 방앗간댁은 동쪽, 주막 주인은 북쪽이라 했다. 진철이 하나를 골라야 그림이 깔끔해진다고 하자 연화가 숯을 내려놓았다.
“깔끔한 기록이 정확한 기록은 아니야.”
그는 그 문장을 장부 첫 장에 옮겼다. 부엌칼을 빼고, 엇갈린 증언도 남겨 둔 뒤에야 나머지 쇠가 계곡 반대쪽으로 휜 것이 보였다.
진철은 깨진 종을 들고 계곡으로 갔다. 어귀에서 한 번 치자 소리는 짧게 죽었다. 두 고수가 섰던 암벽 사이에서 치자 같은 소리가 두 번 커져 돌아왔고, 세 번째 울림에 종을 맨 끈이 손바닥을 팽팽하게 당겼다.
“저들은 몰랐을까?”
연화의 물음에 진철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위소현과 남궁태 정도의 고수가 자신보다 울림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청계촌을 죽이려고 장소를 골랐다는 흔적도 없었다.
“알 수 있었어.” 그가 말했다. “정확히 몇 채가 무너질지는 몰라도, 기파가 절벽에서 더 크게 되받혀 온다는 건 알았을 거야.”
“그럼 왜 여기서 했지?”
진철은 절벽에 남은 검흔을 올려다보았다.
“자기들 칼과 도가 더 크게 울리니까.”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더 나빴다. 위험을 확인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조사한 내용을 들고 다시 관아로 갔다. 형방 서리는 문전에서 돌려보냈지만, 전에 고소장을 읽었던 젊은 서기 박문수가 밤에 진철을 찾아왔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낮에 말한 적 없는 사람으로 해 주시오.”
서기는 관아 뒤편 문서고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먼지 쌓인 장부 몇 권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겉에는 수해, 산사태, 화재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여백에 작은 글씨로 다른 원인이 붙어 있었다.
‘청람문 장로 비무 뒤 제방 파손.’
‘철혈방 추격전 중 민가 소실.’
‘화산 속가 제자 검기 오발, 사망 칠.’
해마다 있었다. 관아는 원인을 고쳐 썼고 무림맹은 배상 여부만 확인했다. 처벌된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왜 보여 주는 겁니까?” 진철이 물었다.
서기의 입술이 떨렸다.
“삼 년 전 죽은 일곱 중 하나가 내 누이였소. 난 그 뒤로 베껴 두기만 했어. 감히 꺼내지는 못했고.”
그는 얇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십이 년 동안의 사건 마흔세 건이 날짜와 문파, 피해자 수까지 적혀 있었다.
진철은 받지 않았다. 이것을 품는 순간, 단순한 피해자에서 감춰진 기록을 훔친 자가 된다. 관아도 무림맹도 돌아갈 길이 아니었다.
연화가 먼저 책을 받았다.
“원본은 두고 필사본만 가져가요. 들키면 모른다고 하세요.”
“모른다고 해도 필체를 보면 압니다.” 서기가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이후 난 장부에 손대지 못할지도 모르오.”
연화는 자기 장부에서 빈 종이 몇 장을 뜯어 주었다.
“그럼 앞으로는 기억한 날짜만 적어 보내세요. 이름은 우리가 확인할게요. 혼자 모든 걸 들고 있지 마세요.”
서기는 종이를 받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진철이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의 소매에 넣었다. 날짜만 보내면 필체가 드러날 문장도, 훔쳤다고 몰릴 원본도 남지 않았다.
진철은 서기의 촛불을 빌려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에는 아직 먹이 덜 마른 사건 하나가 있었다. 청계촌, 사망 십오. 원인은 낙뢰로 고쳐질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자기 이름 옆에 왼손 엄지를 눌렀다. 인주도 없이 눌러 남은 것은 땀 자국뿐이었다.
“이제부터 한 건도 끝난 일로 두지 않겠습니다.”
새벽에 관아를 나온 두 사람의 품에는 금보다 위험한 장부가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