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철폐론자 01 / 06

CHAPTER 01

고수들이 다녀간 자리

3,806 자 · 8 분

편집자용 회차 개요스포일러 · 주요 사건, 인물 선택, 성장 제약

청계촌의 평범한 오후와 진철·연화의 혼례 준비를 출발점으로 삼아, 대장장이인 진철이 쇠의 색과 울림을 읽는 능력을 먼저 생활 기술로 보여 준다. 위소현과 남궁태의 비무가 시작되자 그는 산 전체가 공명해 충격이 누적되고 있음을 감지하지만, 고수들의 장관과 권위에 사로잡힌 주민들은 경고를 쉽게 믿지 않는다.

진철은 종과 쟁기날로 피난을 알리고, 연화는 냇가 사람들을 내보내며 각자 구조 행동을 택한다. 이 선택 덕분에 일부 주민과 아이들은 살지만, 빗나간 기파와 계곡의 반향은 결국 절벽과 대장간을 무너뜨린다. 담금질 물통이 폭압을 갈라 진철은 살아남되 오른팔과 등에 화상을 입고, 연화는 베틀에 깔린 왼손 약지와 소지를 잃으며, 진철의 부모를 포함한 희생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구조적으로 중요한 점은 ‘고수의 압도적 힘’보다 그 힘을 비용 없이 행사하게 하는 시선과 언어를 첫 화부터 문제 삼는 데 있다. 두 고수는 악의를 품지 않았고 슬픔도 보이지만, 남궁태는 금으로 책임을 끝내려 하고 위소현은 희생을 더 큰 무도적 깨달음에 편입한다. 진철이 금을 버리지 않고 물증으로 간직하는 결정은 개인 복수를 증거와 책임 추궁의 서사로 전환하는 첫 단추다.

끝에서 고수들은 아무 제재 없이 떠나고, 진철은 금으로 그들의 칼을 녹이겠다고 맹세한다. 다만 이 단계의 진철에게 내공이나 초월적 수단은 전혀 없으며, 그가 실제로 가진 것은 재료의 흔적을 읽는 감각, 구조 행동에서 확인된 판단력,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을 먼저 돌봐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원칙뿐이다.

새 도끼 머리가 울었다.

집게를 든 진철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담금질 물에도 넣지 않은 쇳덩이가 모루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망치를 잘못 내리쳤을 때 나는 탁한 울림이 아니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진동이 대장간 바닥을 타고 올라와 쇠를 건드리는 소리였다.

“아버지, 채석장에서 또 바위 깨나 봐요?”

풀무 옆에서 숯을 고르던 아버지가 귀를 기울였다.

“오늘 일 쉬는 날이다. 그리고 화약이면 땅부터 울려. 저건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야.”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처마에 매달아 둔 집게들이 한꺼번에 짤랑거렸다.

진철은 도끼 머리를 다시 화덕에 넣지 않았다. 쇠는 지금이 물에 들일 때였다. 날 끝이 익은 감빛을 지나 앵두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한 호흡만 늦어도 단단함이 달라졌다. 그는 산을 한 번, 물통을 한 번 바라보다 집게를 고쳐 쥐었다.

“또 쇠랑 눈싸움하네.”

문간에서 한연화가 말했다. 햇빛을 등진 채 말아 온 베를 양팔에 안고 있었다. 혼례 이불에 쓸 베라며 반년을 고른 것이었다.

“눈싸움이 아니라 색을 보는 거야.”

“도끼가 네 눈 보고 무서워서 단단해지겠다.”

연화가 베를 작업대 위에 펼쳤다. 씨실이 한 군데 비뚤어진 것을 진철이 찾아 손가락으로 눌렀다.

“여기.”

“그걸 찾을 눈이면 혼례 날 내 댕기 색도 기억해야 할 텐데.”

“붉은색.”

“지난번엔 남색이라더니.”

안채에서 어머니의 웃음이 터졌다. 연화는 못 이기는 척 베 끝으로 진철의 팔을 쳤다. 평소 같으면 그 소리에 진철도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루 위의 쇠붙이가 다시 떨었다. 이번에는 베틀의 북이 천천히 움직일 때처럼 일정한 간격이었다.

쿵. 세 호흡.

쿵. 두 호흡.

간격이 줄고 있었다.

진철은 불에서 도끼 머리를 꺼냈다. 눈부신 쇳덩이를 물통에 담그자 흰 증기가 솟구쳤다. 치이익 하는 소리 아래로 산의 울림이 겹쳤다. 서로 다른 두 진동이 부딪히자 물 표면에 잔물결이 촘촘한 마름모를 만들었다.

“연화야, 밖에 나가지 마.”

“왜?”

마을 위쪽에서 환호가 터졌다. 아이들이 “사람이 날아다닌다!”고 외치며 계곡 쪽으로 달려갔다. 진철의 아버지도 대장간 문턱을 넘었다. 푸른 하늘 한복판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마주 선 거구는 검은 도를 어깨에 걸쳤다. 발밑에는 지붕도, 바위도 없었다.

노인 하나가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화산검성…… 위소현 대협이시다.”

검을 든 사내가 먼저 포권했다. 목소리는 멀리 있었으나 바로 귓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했다.

“남궁 형. 십 년 묵은 물음에 오늘은 답을 내봅시다. 검은 뜻을 앞세우고, 도는 형세를 앞세운다 했으니 어느 쪽이 하늘의 이치에 가까운지.”

남궁태가 호쾌하게 웃었다.

“하늘이 귀가 있다면 오늘 지겹도록 듣겠군.”

두 사람의 말에는 살기가 없었다. 오랜 벗이 바둑 한 판을 앞둔 듯했다. 그 온화함이 진철을 더 불안하게 했다.

검이 뽑혔다.

첫 합은 보이지 않았다. 계곡 양쪽 소나무가 같은 방향으로 누웠고, 뒤늦게 굉음이 터졌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 합에 절벽에서 돌이 쏟아졌다. 남궁태가 그 돌 사이를 가르며 도를 올려 쳤고, 허공에 반달 같은 흰 자국이 남았다.

진철은 싸움을 보지 않았다. 대장간 기둥과 우물물, 처마 아래 집게를 번갈아 살폈다. 계곡은 두 고수의 힘을 받아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망치로 속이 빈 쇠를 치면 특정 자리에서 소리가 커진다. 지금 산 전체가 속 빈 종처럼 울렸다.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진동은 약해지지 않고 쌓였다.

“피해야 해.”

진철은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어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땅도, 공기도, 산도 울리고 있었다.

진철은 계곡을 향해 달렸다. 연화가 뒤에서 그의 허리띠를 낚아챘다.

“미쳤어? 저기로 가서 뭘 하게?”

“멈추라고 해야 해.”

“네 목소리가 닿겠어?”

“쇠를 치면—”

진철은 대장간 앞에 걸린 쟁기날을 집어 모루에 세게 내리쳤다. 쨍, 맑은 소리가 퍼졌다. 다시 쳤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보았지만 하늘의 두 사람은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산을 뒤흔드는 힘이 있었고, 산 아래에서 울리는 쇳소리를 들을 까닭이 없었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세요!”

진철은 세 번째로 쟁기날을 쳤다.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아이를 안은 방앗간댁은 망설였고, 주막 주인은 오히려 웃었다.

“저런 광경을 평생 또 보겠어? 대협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절벽이 소리를 되받고 있어요. 무너질 겁니다.”

“네가 산속을 아느냐, 저분들이 아시겠느냐?”

한 노인은 진철의 말을 듣고 손주 둘을 끌어당겼다. 다른 이들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성이 검을 한 번 펼칠 때마다 허공에 꽃잎 같은 빛이 흩어졌고, 도왕의 도가 그것을 쓸어 갈 때면 웅음이 갈비뼈 안쪽까지 울렸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도망치기 어려웠다.

진철은 마을 종을 치려고 회관으로 뛰었다. 연화가 이번에는 막지 않고 반대편 골목으로 달렸다.

“내가 냇가 쪽 사람들을 내보낼게. 너는 웃마을을 깨워.”

“대장간으로 돌아오지 마.”

“네가 명령할 처지야?”

연화는 쏘아붙이고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잔소리해.”

두 사람은 갈라졌다. 진철이 회관 종을 잡아당겼으나 첫 타종 뒤 줄이 끊어졌다. 산에서 내려온 진동이 종 틀의 못을 벌써 반쯤 뽑아 놓은 탓이었다. 그는 어깨로 종을 밀었다. 쇳덩이가 기울며 둔중한 경고음을 냈다.

그 소리에 몇 집이 문을 열었다. 진철은 아이 셋을 냇길로 떠밀고 다리가 불편한 노인을 업으려 했다. 노인은 자기 소부터 풀어야 한다며 버텼다.

“소는 다시 살 수 있어요.”

“저놈 없으면 겨울에 우리가 죽어!”

진철은 외양간 빗장을 부쉈다. 놀란 소가 골목을 치고 나가자 노인은 욕을 퍼부으면서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때 대장간 쪽에서 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냇길 사람들을 내보낸 연화도 뒷담 골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대장간에 남은 진철의 부모를 데려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진철은 부모를 두고 혼자 내려갈 수 없어 돌아섰고, 연화는 무너진 베틀이 놓인 바깥 작업마당으로 먼저 들어왔다.

위소현의 검 끝에 매화처럼 갈라진 빛이 피었다. 남궁태의 도가 그것을 비스듬히 받아 냈다. 흰 빛 한 줄기가 방향을 잃고 계곡 벽을 훑었다.

절벽이 먼저 갈라졌다.

진철은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파국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겹겹이 쌓이던 진동이 한순간 끊겼다. 달아오른 쇠가 깨지기 직전에도 꼭 그렇게 조용해졌다.

“엎드려!”

그가 연화를 안채 반대편 바깥마당으로 밀었다. 연화가 베틀 곁에 넘어졌다. 진철은 부모에게 손을 뻗었으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감싼 채 안채 문 앞에 있었다. 둘 사이를 화덕이 가로막았다.

세상이 희어졌다.

불이 아니라 압력이 먼저 왔다. 대장간 벽이 종잇장처럼 접혔다. 못이 뽑히고 들보가 날았다. 진철은 담금질 물통 뒤로 처박혔다. 쇠로 두른 물통이 찌그러지며 폭풍을 갈라 냈고, 끓어오른 물이 오른팔과 등을 덮었다.

소리조차 사라진 뒤에야 통증이 찾아왔다.

진철은 진흙 속에서 입을 벌렸다. 숨 대신 재가 들어왔다. 오른팔 살갗이 검붉게 들떠 있었고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땅을 긁어 몸을 빼냈다.

대장간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 구덩이가 있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연화가 쓰러져 있었다. 베를 움켜쥔 왼손이 무너진 베틀 아래 깔려 있었다. 진철은 기어가 들보를 밀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떨어진 쇠막대를 지렛대 삼아 들어 올렸다. 연화가 이를 악물고 손을 뺐다. 약지와 소지가 알아볼 수 없게 으깨져 있었다.

“네 부모님부터.”

연화가 숨을 잘라 말했지만, 진철은 그녀의 손목을 베 조각으로 묶었다. 피가 멎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써야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평생보다 긴 한순간이 걸렸다.

대장간 아래쪽에서는 진철의 종소리를 듣고 피했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방앗간댁은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돌을 날랐고, 소를 풀어 줬던 노인은 피 묻은 삽으로 불씨를 덮었다. 진철은 그들에게 연화를 맡기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채가 있던 자리에서 어머니의 비녀가 나왔다. 끝이 녹아 손바닥에 붙을 만큼 뜨거웠다. 아버지의 가죽 앞치마는 절반만 남아 들보 아래 깔려 있었다. 진철은 들보를 들겠다고 덤볐다가 오른팔이 꺾이며 쓰러졌다.

“산 사람부터 꺼내야 한다!” 누군가 외쳤다.

“여기 계십니다.”

진철은 다시 들보를 붙잡았다. 아무도 부모의 형체가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네 사람이 함께 들보를 옮겼지만 아래에는 검게 탄 뼛조각뿐이었다. 진철은 하나씩 천에 담았다. 어느 것이 아버지이고 어머니인지 묻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냇가 쪽 집들은 종소리 덕에 비어 있었다. 피신했던 아이 셋이 살아 돌아왔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되자 진철은 자기 마음이 부모를 배반한 것 같았고, 위로가 되지 않자 조금 전 아이들을 내보낸 선택까지 거짓이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한 채 재 속을 뒤졌다.

해가 기울 무렵 두 고수가 내려왔다. 옷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남궁태는 구덩이와 시신들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계곡의 반향이 예상보다 컸군.”

그는 허리춤에서 금 주머니를 풀어 돌 위에 놓았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

“집을 다시 짓고도 남을 게다. 남궁의 이름으로 부족하지 않게 치러 주마.”

위소현은 재투성이가 된 진철 앞에 앉았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래서 진철은 잠시 말을 기다렸다.

“유감이네.” 위소현이 낮게 말했다. “오늘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수많은 목숨을 지킬 것이야. 이분들의 죽음도 무도의 진전에 헛되지는 않을 걸세.”

진철은 그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았다. 이미 죄와 형량을 정해 놓은 판결문 같았다. 죽은 이는 증언할 수 없고 산 자는 거부할 수 없는 판결.

“관아에 가면 두 분 이름을 대도 됩니까?”

남궁태의 눈썹이 올라갔다.

“대협들의 비무였다고 기록해도 됩니까?”

위소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진철의 타 버린 팔을 보며 말했다.

“사실을 기록하는 건 막지 않겠네. 다만 분노로 사실을 흐리지는 말게. 우리도 피할 수 없는 반향이었으니.”

진철은 구덩이 둘레에 휘어진 못과 한쪽만 깎여 나간 돌을 가리켰다.

“피할 수 없었다는 건 누가 판단합니까?”

위소현의 시선이 처음으로 진철의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답했다.

“무도에 이른 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알지.”

“그럼 감당하지 못한 건 누구 몫입니까?”

남궁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친 몸으로 말이 길구나. 의원에게 갈 금은 충분히 두었다.”

금이 다시 대답을 대신했다.

“치료가 먼저일세. 원망으로 몸까지 해치지 말게.”

두 사람은 해가 산마루에 닿기 전에 떠났다.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막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연화는 의원에게 실려 갔고, 마을 사람들은 시신을 거두기 시작했다. 진철은 돌 위에 남은 주머니 앞에 홀로 앉았다. 금 한 닢을 꺼내자 저녁빛이 번들거렸다. 어머니가 평생 만져 보지 못한 값이었다. 아버지가 수백 자루의 농기구를 만들어도 모으지 못할 값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버리지 않았다. 왼손으로 입구를 묶어 품에 넣었다. 죄인이 두고 간 물증을 없앨 수는 없었다.

산 위에서는 두 고수가 남긴 검흔과 도흔이 노을을 받아 빛났다. 그 흉터가 시작된 자리부터 끝난 자리까지 눈으로 재었다.

“이걸로 당신들 칼을 녹이겠습니다.”

듣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