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대고수가 죽고 점소이만 회귀했다 십오 년 뒤의 고수들이 내 머릿속에서 싸운다 Nitty Gritty Novel Lab 천마신교에 무림이 무너진 십오 년 뒤, 끝내 협력하지 못한 칠대고수는 모두가 믿는 귀래객잔 점소이 류단에게 단 한 번의 회귀를 맡긴다. 과거로 돌아온 류단은 일곱 개의 잠든 무학핵과 미래 고수들의 영혼 잔향을 차례로 깨우며, 살아 있는 젊은 고수들과 그 문파가 이번에는 함께 싸울 수 있는 무림을 만든다. 제1화. 마지막 손님이 돌아왔다 귀래객잔은 이미 타고 있었다. 서까래가 무너질 때마다 불티가 밤하늘로 솟았다. 십오 년 동안 수많은 깃발이 주인을 바꿨으나, 마지막까지 어느 문파의 것도 아니었던 현판은 반쯤 탄 채 매달려 있었다. 류단은 그 아래에 섰다. 왼쪽 옆구리의 창상에서는 피가 멎지 않았고, 오른쪽 무릎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죽기 직전의 몸인데도 손은 습관처럼 탁자를 닦고 싶어 했다. 객방 일곱 칸에는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사이가 나쁜 손님들이 한 명씩 들어가 있었다. “시간이 없다.” 창천문의 검성 백무결이 손바닥을 바닥의 별무늬에 눌렀다. 흰 도포는 피와 재로 검붉었다. “점소이. 돌아가면 먼저 창천문으로 와라. 지휘권을 정리해야 한다.” 맞은편 객방에서 독왕 당소령이 코웃음을 쳤다. “다시 망하고 싶으면 그대로 해. 가자마자 저 인간의 입부터 막아.” “네 독 때문에 서부 전선이 사흘 멈췄다.” “네 명령 때문에 사흘 뒤에 전선 자체가 없어졌지.” 죽음을 앞두고도 손님은 손님이었다. 류단은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술상을 들이던 때와 같은 인사였다. “두 분 다 조용히 돌아가십시오. 다른 손님도 죽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어딘가에서 웃음이 터졌다. 곧 기침과 피가 뒤따랐다. 일곱 사람은 류단을 선택했다. 서로를 믿지 못해서였다. 그 사실이 썩 명예로운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나 류단은 그들의 밀서를 바꿔치기하지 않았고, 굶주린 병사에게 어느 문파의 국자인지 묻지 않았으며, 상반된 명령 둘을 받아도 결국 밥과 길과 잠자리로 바꾸어 냈다. 설무연이 마지막 별에 손을 올렸다. “귀환진은 한 사람만 보낸다. 표식 없는 자, 과거와 미래에 같은 장소를 가진 자.” “그 설명은 열세 번째 들었습니다.” “열네 번째에는 틀릴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웃지 않았다. 별빛이 일곱 객방을 이었다. 일곱 고수의 단전에서 빛이 뽑혀 나왔다. 인간의 삶을 태우는 빛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류단은 무너진 계산대 너머를 보았다. 마영순이 늘 앉던 자리였다. 그녀는 아홉 해 전에 죽었다. 객잔의 열쇠 꾸러미를 끝까지 놓지 않은 채. 이번에는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끝나기 전에 세상이 안으로 접혔다. 일곱 번의 심장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그리고 놋대야가 떨어졌다. 쨍그랑! 류단은 눈을 떴다. 스무 살의 몸이 반사적으로 침상에서 굴러내렸다. 피도 창상도 없었다. 무릎은 멀쩡했고, 손바닥에는 객잔 일을 하며 생긴 굳은살만 박혀 있었다. 창밖은 이른 아침이었다. 장작 타는 냄새, 묽은 죽 냄새, 뒤뜰에서 닭이 세상을 고발하는 소리가 밀려왔다. 문이 벌컥 열렸다. “놋대야 하나 떨어뜨렸다고 죽은 사람처럼 구르냐?” 마영순이 서 있었다. 마흔셋. 허리는 곧고, 두 눈은 사람의 거짓말과 외상값을 같은 속도로 찾아냈다. 무엇보다 두 다리로 서 있었다. 류단은 숨을 들이마셨다. 목구멍이 아팠다. “마 누님.” “왜.” “살아 계시네요.” 마영순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침부터 내 재산을 노리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류단은 웃다가 울 뻔했다. 그래서 급히 바닥의 놋대야를 주웠다. 손이 떨려 두 번이나 놓칠 뻔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밤의 귀래객잔이 있었다. 창밖에는 눈과 재가 섞여 내렸다. 일곱 객방 가운데 첫 번째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피투성이 백무결이 문턱에 서 있었다. —늦었다. 흑아방 놈들이 이미 들이닥쳤을 것이다. 류단은 대야를 든 채 굳었다. —살아 계셨군요. —나는 죽었다. —그러신 것치고 목소리가 아주 건강하십니다. 백무결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은 희미했으나 표정만큼은 생전과 똑같이 엄격했다. —잔향인가. 설무연, 또 설명을 숨겼군. 대문 쪽에서 거친 고함이 터졌다. “마영순! 오늘 해 뜨기 전까지 비우기로 했지!” 류단의 가슴이 얼었다. 이날을 기억했다. 흑아방은 위조한 저당 문서를 들고 와 창고 마당을 빼앗았다. 실랑이 중에 선반이 넘어졌고, 마영순은 날아온 술독을 피하다 오른쪽 무릎이 으스러졌다.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평생 절었다. 류단이 앞마당으로 뛰어나가자 검은 조끼를 입은 사내 여섯이 들어오고 있었다. 선두는 오각이었다. 실패한 이날, 독에 질식해 객잔 문턱에서 죽었던 얼굴. 지금은 서른한 살, 허세로 턱을 치켜들었으나 왼쪽 눈가가 밤새 맞은 사람처럼 부어 있었다. 오각이 종이를 펼쳤다. “원금 여든 냥, 연체 이자 마흔 냥. 오늘부터 창고와 동쪽 마당은 흑아방 소유다.” 마영순이 류단을 밀치고 나왔다. “내가 빌린 건 서른 냥이고 갚은 게 스물넷이다. 네 장부에는 산술도 칼을 맞았느냐?” “인장이 있잖아, 인장이.” 문서는 얼핏 진짜였다. 관아 서기의 붉은 도장까지 있었다. 원래의 류단은 그 도장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진위를 밝힐 힘도, 시간을 벌 힘도 없었으니까. 지금의 그는 문서가 아니라 오각의 손을 보았다. 검지와 중지의 굳은살, 칼집을 누르는 엄지, 발뒤꿈치를 반 치 들고 선 자세. —창천문 외문의 삼재검 골격이다. 형편없이 훔쳐 배웠지만. 백무결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류단은 장부를 가리켰다. “저당권을 넘겨받았다면 원채권자의 수결도 있어야 합니다. 그 장은 어디 있습니까?” 오각의 눈동자가 오른쪽 허리로 튀었다. 반 박자뿐이었다. “점소이가 법도 아냐?” “열두 해 동안 외상 손님을 상대했습니다. 법보다 어려운 일을 했지요.” 구경꾼 사이에서 웃음이 번졌다. 오각의 귀가 붉어졌다. 그는 말로 얻지 못한 권위를 칼로 찾는 사람이었다. 류단은 그것도 기억했다. 그때 처마 아래의 선반이 기울었다. 어린 흑아방도가 뒤로 물러나며 기둥을 걷어찬 탓이었다. 선반 위 놋그릇이 미끄러지고, 가장 무거운 술독이 마영순의 무릎을 향해 떨어졌다. 류단은 생각하기 전에 움직였다. 쟁반을 술독 아래에 비스듬히 끼웠다. 무게가 팔을 짓눌렀다. 그대로 받으면 손목이 부러진다. 그는 열두 해 동안 쏟아지는 국그릇을 살릴 때처럼 허리를 틀고 한 걸음 옆으로 흘렸다. 술독은 쟁반을 타고 굴러 빈 멍석 위에서 깨졌다. 술 냄새가 확 퍼졌다. 마영순은 다치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가 십오 년의 기억보다 무거웠다. “내 술.” 마영순이 말했다. 류단은 울컥한 숨을 삼켰다. “사람부터 걱정해 주시면 안 됩니까?” “사람은 안 깨졌고 술독은 깨졌잖아.” 살아 있었다. 틀림없이 마영순이었다. 오각이 칼을 뽑았다. “장부 내놓으라는 수작이냐!” —목을 쳐라. 백무결이 말했다. —저자는 증거를 없애고 다시 온다. 첫 칼에 손목, 둘째에 경동맥이다. 류단은 오각의 목에서 시선을 뗐다. “싫습니다.” “뭐가 싫어?” 오각이 으르렁거렸다. “손님 말입니다. 자꾸 비싼 주문을 해서.” 오각이 달려들었다. 류단의 안에서 낯선 핵이 맥박쳤다. 일곱 고수가 죽으며 남긴 것.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검의 이해가 있었으나, 스무 살의 단전에는 내공 한 줌 없었다. —일곱 심박이다. 그 이상은 네 경맥이 버티지 못한다. 첫 번째 심박.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서 손끝으로 뻗었다. 거대한 강이 아니라 바늘처럼 가느다란 물줄기였다. 그러나 길은 완벽했다. 류단은 쟁반 모서리로 칼등을 쳤다. 오각의 삼재검 첫 궤도가 반 치 어긋났다. 두 번째. 빈 사발을 발끝으로 차 올렸다. 사발이 오각의 팔꿈치 안쪽을 때렸다. 손아귀가 풀렸다. 세 번째. 류단이 몸을 낮추며 쟁반을 세웠다. 뒤따르던 사내의 몽둥이가 쟁반에 꽂혔고, 그는 그 충격을 밀지 않고 옆으로 흘려 세 번째 사내의 정강이에 보냈다. “점소이가 무슨—” 네 번째. 오각이 즉시 자세를 바꿨다. 훔친 검법이라고 해도 실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칼끝이 류단의 어깨를 노렸다. —왼발을 베고 끝내라. 류단은 대신 탁자보를 잡아당겼다. 위에 놓인 찻잔 셋이 공중으로 떴다. 칼끝이 보에 감겼고, 찻잔이 차례로 오각과 두 부하의 이마에 맞았다. 다섯 번째. 오른손 혈관이 부풀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여섯 번째. 류단은 오각의 겨드랑이 아래로 파고들어 쟁반을 세로로 세웠다. 쟁반 면이 턱을 올려쳤다. 오각의 몸이 붕 떴다가 마당에 처박혔다. 일곱 번째. 류단은 떨어지는 칼을 발등으로 받아 손잡이가 위로 오게 튕겼다. 왼손으로 잡은 뒤, 칼끝을 오각의 목이 아니라 오른쪽 허리춤에 댔다. 칼집 안쪽의 종이 뭉치를 꿰어 끌어냈다. 원채권 장부였다. 심장 소리가 끝났다. 빌려 온 완벽함도 끊겼다. 오른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류단은 칼을 놓아 버렸다. 마당에는 깨진 사발과 신음하는 흑아방도들이 널려 있었다. 죽은 사람은 없었다. 백무결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살려 둔 이유를 설명해라. —장부는 글을 읽지 못합니다. 사람은 읽지요. 류단은 오각 앞에 쪼그려 앉았다. “누가 이걸 만들었습니까?” 오각은 피 섞인 침을 뱉으려다 류단 뒤의 마영순을 보았다. 그녀가 주판을 들고 있었다. 이상하게 칼보다 무서워 보였다. “동쪽 창고의… 장 부두목.” “물건은 뭘 나릅니까?” 오각의 입이 닫혔다. 공포가 허세를 밀어냈다. 그는 자기 패거리보다 다른 누군가를 더 무서워했다. 마영순이 장부를 빼앗아 넘겨 보았다. “위조 맞네. 종이는 관아 물건인데 먹 냄새가 새것이야.” “누님이 보관하십시오. 놈들이 찾으러 올 겁니다.” “내 객잔 장부를 내가 보관하는데 네 허락이 필요하냐?” 그녀는 장부를 품에 넣고 쓰러진 사내들을 훑었다. “탁자 하나, 술독 하나, 사발 넷, 찻잔 셋. 치료비는 각자 부담. 류단, 저놈들 내보내.” “오각은 증언을 받아야 합니다.” “보증금 낼 돈 있어?” 오각이 얼떨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보내. 돈 없는 원수까지 재워 주면 객잔 망해.” 흑아방도들이 부상자를 끌고 달아났다. 류단은 추격하지 않았다. 원래의 이날이라면 동쪽 창고로 쫓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부가 마영순의 손에 들어간 순간, 가장 중요한 승리는 이미 얻었다. 마영순이 그의 떨리는 오른손을 낚아챘다. “이건 또 뭐냐.”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넌 긴장하면 그릇을 깨지, 사람 여섯을 접어 놓지는 않아.” 그녀는 류단의 손목을 짚었다. 의술은 몰라도 열두 해 키운 아이의 맥이 정상인지 정도는 알았다. “오늘부터 칼질 금지. 오른손으로 쟁반도 들지 마. 그리고 밤에 말해. 네가 뭘 숨기는지.” 명령이었다. 귀래객잔 주인의 명령은 검성의 명령보다 당장 강했다. 류단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예.” 그날 밤의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을 벌었다. 마영순의 무릎도, 객잔도, 증거도 지켰다. 그때 대문 밖에서 사람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류단이 돌아보았다. 검은 옷의 사내 하나가 문지방을 붙잡고 있었다. 쫓겨난 뒤 동쪽 창고로 돌아갔던 오각이었다. 얼굴은 청회색이었고 입술 사이로 검푸른 거품이 흘렀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창천문의 푸른 옥패가 박혀 있었다. “창고… 종이 세 번… 종 한 번….” 오각은 마당으로 쓰러졌다. 백무결의 목소리가 류단의 머릿속에서 낮게 울렸다. —그 패는 내 것이다. 류단은 오각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맥은 끊어질 듯 가늘었다. 십오 년 전의 오각은 바로 이 자리에서 죽었다. 이번에는 아직 숨이 남아 있었다. 제2화. 독은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다 “들여놓지 마.” 마영순은 단호했다. “살려야 합니다.” “살리려면 더더욱 식당에는 들여놓지 마. 독 묻은 사람 옆에서 손님들 아침밥 먹일 생각이냐?” 류단은 오각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은 채 멈췄다. 마영순의 말이 옳았다. 사람을 구하겠다고 객잔 전체를 오염시키면 선의가 아니라 난동이었다. “부엌 뒤 장독방을 쓰겠습니다. 식재료는 전부 앞 창고로 옮기고, 쓰는 물과 천은 제가 따로 표시하겠습니다.” “바닥까지 네가 삶아.” “예.” “치료비도 네 삯에서 뺀다.” 오각이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건… 내가….” 마영순이 내려다보았다. “돈 있냐?” 오각은 다시 눈을 감았다. “환자가 안정을 찾았습니다.” 류단이 말했다. “헛소리할 힘은 있네. 옮겨.” 장독방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류단은 문과 창을 열고, 항아리들을 밖으로 내고, 바닥에 재를 뿌려 오각의 몸에서 떨어지는 액체가 번지지 않게 했다. 오른손은 여전히 떨렸다. 조금 전 백무결의 핵을 일곱 심박까지 끌어쓴 대가였다. 오각의 검은 상의를 찢자 가슴에서 목까지 푸른 핏줄이 나뭇가지처럼 번져 있었다. 겨드랑이에는 작은 자상 하나. 칼에 베인 게 아니라 무언가를 주입한 자국이었다. —옥패부터 확보해라. 백무결이 말했다. 류단의 마음속 밤 객잔에서 그는 계산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죽은 사람답지 않게 성질이 급했다. —그자는 원래 죽는다. 시신을 보존하면 창천문에서 독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다. “추적했습니까?” —뭐라고? “그때 창천문이 시신을 가져갔지요. 독의 이름을 알아냈습니까?” 침묵이 답이었다. 류단은 기억했다. 이날 죽은 오각의 시신 때문에 창천문과 당가가 사흘을 다퉜다. 창천문은 증거라며 내주지 않았고, 당가는 온전한 표본이 아니라며 치료법을 주지 않았다. 그 사이 시장 사람들이 쓰러졌다. “모르셨군요.” —당가는 정보를 숨겼다. “창천문은 시신을 숨겼고요.” —그건 관할권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별 차이가 없었겠습니다.” 백무결의 표정이 굳었다. 류단은 옥패를 오각의 손에서 빼냈다. 창천문 내문 제자에게 지급되는 청옥 신패였다. 미래의 백무결이 자기 것이라 했지만, 지금 이 시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인해야 했다. 마영순이 작은 나무함을 들고 들어왔다. “그건 내가 맡는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 주머니보다 내 자물쇠가 낫지.” 그녀는 옥패를 천으로 집어 함에 넣었다. 열쇠를 돌린 뒤 허리춤에 찼다. “이제 뭘 할 거냐?” 류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래에 오각은 죽었다. 그가 살아난 적은 없었다. 백무결도 독을 몰랐다. 정확히 아는 것이라곤 이대로 두면 몇 식경 안에 숨이 끊어진다는 사실뿐이었다. 오각의 몸이 갑자기 활처럼 휘었다. 이가 부딪치고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찬물, 깨끗한 천, 소금, 대나무 관이 필요합니다.” “의원도 아니면서?” “그래서 죽이지 않을 만큼만 하겠습니다.” 마영순은 류단을 오래 보았다. 오늘 아침부터 낯선 말을 하고 낯선 몸놀림을 보이는 스무 살짜리. 하지만 결국 그녀가 본 것은 늘 환자보다 먼저 물과 걸레를 챙기던 점소이였을 것이다. “우물 두레박에는 손대지 마. 내가 퍼 줄 테니 받은 물만 써.” “예.” 류단은 오각의 몸을 옆으로 돌려 거품이 기도를 막지 않게 했다. 젖은 천으로 목과 겨드랑이를 식히고, 대나무 관으로 아주 조금씩 소금 탄 물을 흘려 넣었다. 토하면 다시 옆으로 돌렸다. 내공으로 독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백무결의 핵은 밤을 온전히 쉬기 전까지 다시 열 수 없었고, 억지로 쓴다면 경맥이 상할 터였다. —증거를 망치고 있다. “살아 있는 증언이 더 낫습니다.” —입을 열 거라는 보장이 없다. “죽으면 절대 안 엽니다.” 오각이 눈을 번쩍 떴다. 동공이 풀린 채 류단의 목을 움켜쥐었다. “네가… 장 부두목을 불렀지.” “저는 어제까지 동쪽 창고가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정확히는 실패한 미래에서 나중에 폐허를 조사하며 구조를 복원했다. 지금의 창고가 그때와 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 종 두 번이면… 옮기고, 세 번이면 태워….” “아까는 종이 세 번, 종이 한 번이라고 했습니다.” “종이가… 세 번 접힌 장부… 종은 한 번… 서쪽 문….” 오각의 말이 흐려졌다. 류단은 억지로 의미를 맞추려 하지 않았다. 열에 뜬 말은 사실과 공포가 섞인다. 그때 그의 겨드랑이 상처에서 검푸른 액체 한 방울이 흘렀다. 재 위에 떨어지자 가장자리가 연두색으로 변했다. 류단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자물쇠가 울렸다. 쿵. 아직 열리지 않은 여섯 객방 중 하나였다. 백무결도 돌아보았다. —누구냐?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오각의 맥이 다시 가늘어졌다. 류단은 깨끗한 천을 상처 위에 눌렀다. 선택해야 했다. 액체를 온전히 보존하려면 천을 떼고 흘려 받아야 했다. 그러면 오각의 몸 안으로 독이 더 퍼질 수 있었다. 그는 천을 눌렀다. “증거보다 사람입니다.” —점소이! “이번에는 당신 말 안 듣겠습니다.” 오각이 흑아방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적이라도 살리고 보자는 아름다운 마음만도 아니었다. 실패한 미래의 오각에게는 오늘 이후가 없었다. 한 인간을 한날의 죄로 끝내 버리기에는 남은 십오 년이 너무 길었다. 두 번째 문이 열렸다. 약재 냄새가 밤 객잔을 가득 채웠다. 문 안에는 선반이 수십 겹으로 이어졌고, 깨진 약병과 피 묻은 붕대가 바닥을 덮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마른 여인이 앉아 있었다. 서른여섯의 당소령. 검은 머리칼 사이에 비녀 대신 독침을 꽂고, 검은 의원복 소매를 걷은 채였다. 그녀는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그 천을 당장 떼. 상처를 막으면 독기가 심장 쪽으로 역류해. 백무결이 반박했다. —독액을 흘리면 표본이 오염된다. 당소령이 눈을 떴다. —네가 독을 알면 내가 검을 먹겠다. —나는 시신의 증거를— —그래서 다 죽였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류단의 머릿속에서 부딪쳤다. 그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한 분씩 말씀하십시오. 여기는 객잔입니다.” 당소령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의 귀래객잔과 열린 첫 객방, 죽은 뒤에도 명령할 준비가 된 백무결을 차례로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설무연을 만나면 혀부터 뽑아야겠군. —줄을 서라. “환자가 죽습니다.” 두 잔향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당소령이 오각의 몸을 류단의 눈으로 살폈다. 그녀의 기억이 밀려왔다. 초록빛 맥을 따라 내장이 굳어 가는 수십 구의 시신, 약솥, 실패한 처방, 스스로 팔에 독을 찌르던 젊은 손. 류단은 그 기억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오각의 숨소리에 집중했다. —녹맥독이다. 하지만 상처를 막으면 안 돼. 심장보다 사지 쪽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팔 안쪽 세 혈을 차례로 눌러. “내공 없이도 됩니까?” —힘으로 누르지 마. 맥이 뛰는 방향을 느껴. 너, 접시 여러 장 들 때 어느 쪽이 기우는지 알지? “압니다.” —그것과 같아. 흐르는 쪽을 막는 게 아니라 돌아갈 길을 좁혀. 전설의 독공 설명이 설거지물 길들이기와 닮아 있었다. 류단은 이해했다. 그는 오각의 팔을 펴고 손목, 팔꿈치 안쪽, 겨드랑이 아래를 차례로 눌렀다. 완벽한 의술을 실행할 힘은 없었지만, 어디를 얼마나 건드리면 안 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당소령이 박자를 불렀고 백무결이 호흡을 셌다. —지금 천을 떼. 류단이 천을 떼자 검푸른 피가 가느다랗게 흘렀다. 마영순이 문밖에서 내민 사기 접시가 정확히 그 아래 들어왔다. “내 그릇 또 깨면 값 받는다.” “안 깨겠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말했지.” 독혈 세 방울이 접시에 고였다. 당소령은 색을 보자 욕설을 삼켰다. —녹맥독에 석회유를 섞었어. 흡수를 늦추는 결합제다. 원래 이 시기에는 없던 방식인데. “미래에는 언제 나왔습니까?” —이 년 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백무결이 말했다. —누군가 제조법을 앞당겼다는 뜻인가. “아니면 당 선배가 그때 이 표본을 못 봤다는 뜻입니다.” 당소령은 류단을 흘겼다. —막 깨어난 사람의 기억부터 의심하네. “사람 모양의 기억이라면서요. 기억이면 틀릴 수 있고, 사람이면 더더욱 틀릴 수 있지요.” 당소령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마음에 들어. 백무결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응급 처치는 해가 중천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류단은 오각의 체온을 식혔고, 당소령의 지시에 따라 숨길을 확보했으며, 마영순은 오염된 천을 삶고 깨끗한 물을 공급했다. 정오 무렵 푸른 핏줄의 번짐이 멎었다. 오각이 눈을 떴다. 이번에는 초점이 있었다. “왜… 살렸냐?” “객잔 문 앞에서 죽으면 재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유냐?” “치료비 받을 사람도 필요하고요.” 마영순이 문밖에서 말했다. “열 냥이다.” 오각의 얼굴이 독 맞았을 때보다 창백해졌다. “사람 하나 살리는데 열 냥이나?” “내 부엌을 반나절 닫았다.” “다시 죽으면 깎아 주냐?” “장례비가 붙지.” 오각은 살아야 할 이유를 얻었다. 류단은 그에게 따뜻한 물을 조금 먹였다. “동쪽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각은 입을 다물었다. 류단은 재촉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흑아방이 있을 수 있고, 안에는 그가 배신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장 부두목은 오늘 아침 너희가 장부를 빼앗은 걸 알았다.” 오각이 마침내 말했다. “내가 옥패를 훔쳤다고 의심했고. 사실은 창고에 쓰러져 있던 청의인에게서 주웠다. 돌려주려 했는데 값이 나갈 것 같아서….” “정직이 아주 짧게 다녀갔군요.” “그 인간들이 내 입을 막으려고 독침을 찔렀어. 물건을 옮기는 신호는 종 한 번이다. 서쪽 문으로 수레가 나가. 장부는 종이를 세 번 접어 대들보 틈에 숨겨 놨고.” 원래 죽어 버린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정보였다. “몇 시에 옮깁니까?” “내가 죽었다고 확인한 뒤.” 류단은 창밖을 보았다. 흑아방은 오각이 살아난 것을 알게 되면 일정을 바꿀 것이다. 실패한 미래의 정확한 순서는 여기서 끝났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두렵고, 또 후련했다. 이제부터는 기억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선택해야 했다. 당소령이 말했다. —상처의 찌꺼기를 따로 밀봉해. 당가가 와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 백무결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창천문 물건을 지닌 자에게서 나온 증거다. 우선 우리 쪽에 넘겨야 한다. “둘 다 아닙니다.” 류단은 사기 접시 위에 다른 접시를 덮고 가장자리를 밀랍으로 봉했다. 봉인 끈 한쪽에는 오각의 지장을 찍고, 다른 한쪽에는 마영순의 수결을 받았다. “당장은 환자를 둔 귀래객잔의 물건입니다. 의술을 가진 사람이 오면 치료용 표본을 내주고, 문파가 오면 입회시켜야지요.” 마영순이 봉인물을 받아 들었다. “왜 자꾸 내 객잔에 골치 아픈 게 늘어나지?” “다른 데 두면 싸우니까요.” “여기서 싸우면?” “기물 파손비를 받으시면 됩니다.” “그건 괜찮네.” 그녀는 봉인물을 옥패와 다른 상자에 넣었다. 열쇠도 다른 것을 썼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벌써 이중으로 사고하고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말발굽 소리가 객잔 앞에 멎었다. 청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대문을 에워쌌다. 선두의 사내는 스물넷 남짓, 먼지 묻은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류단은 그를 알아보았다. 남소군. 실패한 미래에도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다 이름 없이 죽은 창천문의 현장 조사관. 남소군이 푸른 인장을 펼쳤다. “창천문 조사대다. 도난당한 내문 신패의 기운이 이곳에서 끊겼다.” 그의 시선이 마당의 칼자국과 헛간에 누운 오각, 류단의 떨리는 오른손을 훑었다. “흑아방의 증언으로는 귀래객잔 점소이가 창천문 검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류단의 머릿속에서 백무결이 한숨을 쉬었다. —남소군. 저 친구는 한번 물면 산문까지 끌고 간다. 남소군이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류단. 신패 절도와 무공 절취 혐의로 동행해 줘야겠다.” 마영순이 대문 가운데로 나섰다. “안 돼.” 남소군의 눈썹이 움직였다. “공무다.” “여긴 내 객잔이고, 저놈은 내 점소이다. 체포하려면 먼저 훔쳤다는 패부터 보여 줘.” “그 패를 내놓으라는 말이다.” “영수증부터 써.” 검을 든 일곱 사람과 주판을 든 한 사람이 마주 섰다. 류단은 처음으로 남소군이 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제3화. 나보다 어린 검성 다음 날 아침까지 창천문 조사대는 귀래객잔 대문을 지켰다. 마영순은 밤새 문밖에 서 있던 사람에게도 아침 죽값을 받았다. 죽솥을 비운 뒤 그녀는 류단을 계산대 안으로 불렀다. “밤에 말한다며.” 류단은 열린 첫 객방과 아직 닫힌 여섯 문을 떠올렸다. 전부 말하면 마영순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일곱 문파의 표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제 한 약속부터 배신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조금 압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 객잔과 누님이 망가지는 일은 봤습니다.” 마영순은 웃지 않았다. “어디서 봤는지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사흘이다. 그동안 내 집에서 이상한 힘을 또 쓰려면 먼저 말해. 사흘 뒤에도 입 다물면 열쇠 전부 내놔.” 류단은 고개를 숙였다. “그 조건을 받겠습니다.” 귀래객잔에서 검을 뽑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정당한 이유와 탁자값이었다. 남소군은 첫째가 있다고 믿었고, 마영순은 둘째부터 내라고 했다. “신패는 창천문 소유다.” “지금은 내 상자 안에 있어.” “그게 절도라는 뜻이다.” “독 맞고 쓰러진 놈 손에서 떨어진 걸 보관한 게 절도면, 네 문파는 길에서 쓰러진 사람부터 주워 가르치나?” 남소군 뒤의 젊은 제자 하나가 웃음을 참다가 사레가 들렸다. 남소군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내밀었다. “옥패를 확인하겠다. 확인 뒤 바로 반환하지.” “글로 써.” 마영순은 붓과 종이를 탁자에 놓았다. 이미 먹까지 갈려 있었다. 류단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실패한 미래에서 창천문은 신패와 시신을 가져갔다. 귀래객잔에는 무릎이 망가진 주인과 깨진 술독만 남았다. 이번에는 같은 사람들이 왔지만, 마당 한가운데 놓인 탁자 하나가 결과를 바꾸고 있었다. 남소군은 끝내 영수증을 썼다. 신패의 모양과 흠집, 인계 시각, 돌려주지 못할 경우의 책임까지 적었다. 마영순이 문장을 두 번 고치게 한 뒤에야 잠긴 상자를 열었다. 청옥 신패가 드러나자 남소군의 얼굴이 굳었다. “백 사제의 것이다.” 류단의 머릿속에서 미래의 백무결이 말했다. —나는 사제가 아니라 사형이었다. “지금은 어린 모양이네요.” —스물둘이면 어리지 않다. “저보다 두 살 많습니다.” —그러니까 어리지 않다고. 마당 밖에서 또 한 무리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청색 도포를 입은 청년이 말에서 내렸다. 허리에 맨 검은 장식이 없었고, 옷은 검소했다. 하지만 남소군을 포함한 조사대 전원이 자세를 바로 했다. 스물두 살의 백무결이었다. 류단은 십오 년 뒤, 피와 재를 뒤집어쓴 검성을 기억했다. 그 얼굴이 아직 흉터 하나 없이 매끈했다. 눈빛은 똑같이 곧았고, 똑같이 남의 선택까지 책임지려 들었다. 마음속 백무결이 침묵했다. 젊은 백무결은 신패를 확인하고 오각을 보았다. “살아 있군.” “유감입니까?” 류단이 물었다. “다행이다. 동시에 증언의 신뢰는 검증해야 한다.” 당소령이 안쪽 객방에서 빈정거렸다. —어릴 때부터 저렇게 말했나? 다행이라고 먼저 말하면 혀에 가시가 돋는 병이라도 있었어? —의학적 판단은 네 몫이다. —환자 앞에서 유감부터 확인하는 건 네 몫이고. 류단은 두 목소리를 무시하려 애썼다. 남소군이 그를 가리켰다. “이자가 흑아방 여섯을 제압하면서 창천문 기초검의 수법을 썼다고 합니다.” 젊은 백무결의 시선이 류단의 오른손에 머물렀다. 떨림은 전날보다 줄었지만 완전히 멎지 않았다. “검을 배운 적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 삼재검의 파검식을 알았다?” “상대가 잘못 썼습니다. 손님이 국수를 젓가락이 아니라 칼집으로 먹으면 누구나 이상한 줄 압니다.” “누구나 어느 점이 틀렸는지는 모른다.” 젊은 백무결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먼저 움직였다. 미래의 그와 같은 버릇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구조를 보면 위험보다 먼저 해부하고 싶어 했다. “세 합만 겨루자.” 남소군이 낮게 불렀다. “백 사제.” “진짜 창천문 무공인지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내공은 쓰지 않겠습니다.” 류단이 원하는 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사흘의 시간, 창고 조사에 필요한 인력, 그리고 독 증거가 귀래객잔에 합법적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인정이었다. “제가 이기면 세 가지를 약속하십시오.” “먼저 말해 봐라.” “첫째, 신패는 영수증대로 돌려드리되 오각의 증언은 귀래객잔에서 받습니다. 둘째, 녹맥독 표본은 의원이 올 때까지 마 누님이 보관합니다. 셋째, 사흘 동안 동쪽 창고를 공동 조사합니다.” “공동이라면 누구와?” “당가입니다.” 조사대에서 불편한 기색이 번졌다. 젊은 백무결은 즉답하지 않았다. “네가 지면?” “신패 절도와 무공 절취 혐의로 따라가겠습니다. 다만 마 누님의 장부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 장부는 본래 우리 관할이 아니다.” “그 말씀도 써 주시면 좋고요.” 마영순이 종이를 한 장 더 밀었다. 젊은 백무결의 입꼬리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좋다.” 객잔 마당이 비워졌다. 류단은 검 대신 차를 나르던 둥근 쟁반을 들었다. 젊은 백무결은 목검을 빌렸다. 미래의 백무결이 류단의 시야 위에 검로를 겹쳤다. —첫 수는 청운개로. 왼쪽 어깨를 비우고 오른발이 먼저 온다. 쟁반 아래를 받쳐 손목을 꺾어라. “본인이 무슨 수를 쓸지 압니까?” —나는 나다. 당소령이 웃었다. —저 자신감 때문에 우리가 망했지. 첫 합. 젊은 백무결의 오른발이 움직였다. 목검이 낮게 깔렸다가 위로 솟았다. 미래의 설명과 정확히 같았다. 류단은 쟁반을 눕혀 목검 옆면을 누르고 반 걸음 파고들었다. 쟁반 모서리가 젊은 백무결의 가슴 한 치 앞에서 멎었다. 구경꾼들이 숨을 들이켰다. 젊은 백무결은 물러서며 웃지 않았다. 눈은 더 밝아졌다. “내 검을 아는군.” “지금 것은 알았습니다.” 두 번째 합에서 그는 청운개로를 쓰지 않았다. 발을 끌며 검을 뒤집었다. 창천문 기초검이되 미래의 백무결이 떠올린 순서에는 없는 연결이었다. —비산절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세 걸음. 류단이 첫걸음을 떼는 순간 젊은 백무결이 검을 짧게 접었다. 비산절벽의 장쾌한 횡베기가 아니라 손잡이 끝으로 쟁반 중심을 찍었다. 쨍! 충격이 팔을 타고 올랐다. 류단은 두 걸음 밀렸다. 젊은 백무결이 쟁반 가장자리의 찌그러진 자국을 보았다. “한 번 보여 주니 대응을 외웠군. 그렇다면 외우지 못한 검을 쓰면 된다.” 마음속 미래의 백무결이 입을 다물었다. 당소령이 아주 즐거워했다. —어린 네가 더 낫네. —상대가 내 기초를 도용한다는 전제에서 최적화한 임기응변일 뿐이다. —그래. 그걸 더 낫다고 해. 류단은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전날 다친 오른손이 욱신거렸다. 밤을 쉬었으니 백무결의 핵을 다시 열 수는 있었다. 그러나 세 합짜리 시험에서 빌린 힘으로 젊은 백무결을 찍어 누르면 무엇을 증명하는가. 그가 원하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제한된 협력이었다. 세 번째 합을 앞두고 마영순이 차 주전자를 들고 마당 가장자리를 지나갔다. 구경꾼 탓에 식당 안쪽 손님에게 돌아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싸울 거면 밥값이라도 내든가.” 그녀가 빈 탁자에 찻잔 셋을 놓았다. 탁자 다리 하나가 고르지 않아 쟁반이 살짝 기울었다. 류단의 눈이 그 움직임을 좇았다. 기울어진 무게를 억지로 세우면 손목에 힘이 몰린다. 한 걸음 옮겨 다음 발에 넘기면 그릇은 수평을 찾는다. 젊은 백무결이 달려들었다. 미래의 목소리가 외쳤다. —허초다. 검끝을 보지 말고 어깨를 쳐! 류단은 듣지 않았다. 그는 목검을 막지 않았다. 쟁반을 비스듬히 대고 충격을 받았다. 쟁반이 기울어지는 방향을 따라 왼발을 뺐다. 몸이 밀려나는 대신 원을 그리며 젊은 백무결의 옆으로 흘렀다. 받은 힘이 허리와 오른발을 지나 쟁반 반대편으로 옮겨 갔다. 류단은 그 무게를 그대로 넘겼다. 쟁반 가장자리가 젊은 백무결의 손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목검이 떨어졌다. 동시에 류단의 발끝이 바닥을 긁어 목검이 흙에 닿기 전에 받았다. 그는 목검 손잡이가 위로 가게 돌려주었다. “세 합입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미래의 백무결도 조용했다. 젊은 백무결은 목검을 받아 들었다. 패배를 부정할 수도 있었다. 내공을 쓰지 않았고, 실전이 아니었으며, 류단이 첫 수를 미리 알았다. 모두 사실이었다. “내가 더 강하다.” 그가 말했다. “예.” “그런데 세 합 안에는 네가 이겼다.” “그것도 맞습니다.” “마지막 보법은 창천문의 것이 아니군.” “방금 찻잔을 보고 배웠습니다.” 젊은 백무결이 기울어진 탁자를 보았다. 그 표정이 처음으로 나이답게 어이없어졌다. “찻잔에게 졌단 말인가?” 마영순이 끼어들었다. “찻값은 별도다.” 조사대에서 이번에는 대놓고 웃음이 났다. 젊은 백무결은 목검을 남소군에게 돌려주었다. “약속을 지키겠다. 다만 사흘이다. 그 뒤에는 증거를 산문으로 이송한다.” “당가와 의료 처분을 합의하지 못했다면 이송하지 않습니다.” 류단이 말했다. “방금 네가 조건을 더할 위치인가?” “독이 무림인을 가려서 죽입니까?” 젊은 백무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럼 당가가 독을 핑계로 증거를 독점하면?” “그래서 둘 다 혼자 못 가져가게 하자는 겁니다.” 류단은 마영순이 보관한 봉인물을 가리켰다. “환자의 몸과 독은 의술의 관할입니다. 누가 찔렀고 어디서 운반했는지는 치안의 관할입니다. 하나를 이유로 다른 하나를 삼키지 마십시오.” 미래의 백무결이 낮게 말했다. —나는 그때 둘 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 다 놓쳤지요.” 그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젊은 백무결은 미래의 죄를 알지 못했고, 그것으로 심판받을 이유도 없었다. 남소군이 앞으로 나왔다. “공동 조사를 한다면 현장 지휘가 필요합니다. 서로 명령이 충돌하면 더 위험해집니다.” 젊은 백무결이 그를 보았다. 실패한 미래의 첫 창고 습격에서 그는 남소군의 보고를 듣고도 직접 모든 경로를 정했다. 남소군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권한이 없어서 사람들을 우회시키지 못했다. 미래의 백무결이 말했다. —내가 지휘해야 한다. 창고에 창천문 계통의 함정이 있다면 남에게 맡길 수 없어. 류단은 젊은 백무결에게 물었다. “이 일대 길과 흑아방 출입처를 누가 가장 잘 압니까?” “남 사형이다.” “검은 누가 더 강합니까?” “내가 강하다.” “그러면 검이 필요한 곳은 백 소협이 맡고, 길이 필요한 곳은 남 대협이 맡으면 됩니다.” 젊은 백무결은 남소군을 향해 돌아섰다. “남 사형. 사흘 동안 외곽 경로와 인원 배치는 사형이 맡아 주십시오. 나는 현장 내부 위협을 맡겠습니다.” 남소군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곧 포권했다. “명을 받들겠다.” “명령이 아니라 위임입니다.” 류단이 말했다. 젊은 백무결이 노려보았다. “문구까지 네가 정하나?” “나중에 책임을 도로 빼앗지 못하게 해야지요.” “너는 정말 점소이답지 않군.” 마영순이 영수증과 합의서를 한데 모으며 말했다. “점소이 맞아. 남의 짐을 어디에 놓아야 안 넘어지는지 아는 게 일이니까.” 그 한마디에 류단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미래의 장군과 독왕은 그를 중재자라 불렀지만, 마영순에게 그는 여전히 짐을 나르는 아이였다. 어쩌면 둘은 같은 일이었다. 신패는 합의서에 적힌 대로 젊은 백무결에게 반환됐다. 그는 옥패 뒤의 흠집을 쓸어 본 뒤 허리춤에 찼다. 귀래객잔은 절도 혐의 대신 임시 증거 보관처가 되었다. 남소군은 동쪽 창고로 이어지는 세 길을 그려 오기로 했다. 오각은 헛간 문에 기대 그 광경을 보았다. “내 말 한마디에 창천문이 움직이는 날도 오는군.” “아직 믿은 건 아닙니다.” 류단이 말했다. “기분 좀 내게 두면 안 되냐?” “치료비 열 냥 갚으면요.” 오각은 다시 누웠다. 해가 질 무렵, 말 한 대가 객잔 앞에서 거칠게 멎었다. 회색 의원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약상자를 든 채 들어왔다. 스물한 살의 당소령이었다. 미래의 독왕보다 얼굴이 둥글고 눈매가 부드러웠다. 그러나 봉인 상자와 창천문 제자들을 보는 순간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사천당가 동부 의원의 당소령입니다.” 그녀는 마영순에게 패를 보인 뒤 젊은 백무결을 향해 돌아섰다. “녹맥독 표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창천문 사람은 봉인에서 세 걸음 물러나세요.” 젊은 백무결이 답했다. “그 표본은 우리 신패를 지닌 자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검으로 독을 진맥하시려고요?” 류단의 머릿속에서 미래의 당소령이 중얼거렸다. —내가 저렇게 순했나? 미래의 백무결이 처음으로 웃었다. —놀라울 만큼 똑같군.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마영순이 주판을 탁 쳤다. “먼저 진찰비부터 정해.” 귀래객잔에서는 독왕도 검성도 그 순서를 거스를 수 없었다. 제4화. 미래의 독왕은 아직 의원이었다 “환자의 이름은?” “오각.” “나이는?” “서른하나.” “독에 노출된 시각과 경로는?” 류단은 아는 것과 짐작하는 것을 나누어 답했다. 이틀 전 아침 동쪽 창고에서 겨드랑이에 침을 맞았다는 오각의 진술. 객잔까지 걸어온 시간. 처음 쓰러졌을 때의 체온과 맥. 검푸른 피와 연두색 가장자리. 식힌 물의 양과 토한 횟수. 젊은 당소령은 한 번도 말을 끊지 않았다. 기록을 마치고 나서야 류단의 손을 보았다. “오른손은 왜 떨리죠?” “그건 환자와 상관없습니다.” “환자를 만진 사람의 몸 상태는 환자와 상관있어요. 손에 상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보여 주세요.” 류단이 손바닥을 펴자 그녀는 손가락 사이까지 확인했다. 미래의 당소령이 마음속에서 말했다. —좋아. 적어도 그때의 나는 기본은 했군. 백무결이 대꾸했다. —네 말대로라면 스스로 독을 시험한 것도 기본이었나? 당소령의 잔향이 차갑게 굳었다. —그 얘기는 하지 마. 젊은 당소령은 두 잔향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마영순에게 봉인의 수결을 확인하고, 창천문 측 입회자로 남소군을 지목했다. 젊은 백무결이 물었다. “왜 내가 아니지?” “당신은 환자보다 신패를 먼저 봤으니까요. 남 대협은 들어온 뒤 오염된 바닥을 밟지 않았습니다.” 남소군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백무결은 잠시 입을 다문 뒤 세 걸음 물러났다. 미래의 백무결이 중얼거렸다. —판단 기준이 합리적이다. 당소령의 잔향이 웃었다. —칭찬을 입 밖으로 하는 법은 끝내 못 배웠지. 류단은 두 사람 모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젊은 당소령이 봉인을 열었다. 그녀는 접시 위의 독혈을 가느다란 은침으로 찍고, 세 종류의 약수에 차례로 풀었다. 첫 잔은 검게, 둘째는 탁한 흰색으로, 셋째는 선명한 노란색으로 변했다. “녹맥독이 맞습니다. 하지만 결합제가 이상해요.” 류단은 미래의 당소령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먼저 현재의 의원이 무엇을 보는지 기다렸다. 젊은 당소령은 노란 잔을 코 가까이 가져갔다가 즉시 내려놓았다. “석회유만은 아니에요. 송진을 정제한 접착 성분이 섞였습니다. 기름에 풀어도 가라앉지 않게 하려는 것 같군요.” “기름에요?” 남소군이 물었다. “가능성을 말한 겁니다. 아직 단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오각이 누운 헛간으로 갔다. 오각의 눈꺼풀, 혀, 손톱을 살핀 뒤 복부를 눌렀다. 오각이 비명을 질렀다. “아픈 곳을 누르면 아프지!” “살아 있는지 확인했어요.” “맥을 짚으면 되잖아.” “입이 산 걸 확인하는 편이 빨라서.” 미래의 당소령이 감탄했다. —정말 나군. 검사를 마친 젊은 당소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독이 빠지는 게 아니라 자리를 바꾸고 있어요.” “무슨 뜻입니까?” “응급 처치로 심장과 뇌는 지켰지만, 결합제가 장부에 붙었습니다. 이대로면 열이 내렸다가 저녁에 다시 오를 거예요. 원래 녹맥독 해독법을 그대로 쓰면 결합제가 먼저 풀리면서 독이 한꺼번에 퍼질 수 있습니다.” 미래의 당소령이 빠르게 처방을 읊었다. —청령초 세 돈, 백화근 한 돈, 빙편 반 푼. 먼저 장부의 열을 내리고 해독산을 넣으면 된다. 류단이 물었다. “그 처방이 이 결합제에도 통합니까?” —녹맥독은 내가 만들다시피 연구했다. “이 시기의 이 결합제는 못 보셨다고 했습니다.” —원리는 같아. 젊은 당소령은 약상자를 뒤지다 손을 멈췄다. “청령초가 부족해요.” 미래의 그녀가 즉시 말했다. —당가 동부 의원 지하 약고의 세 번째 약장 안쪽에 완성 처방이 있다. 밤에 들어가 가져와. 문고리 아래 독사는 오른쪽으로 두 번 돌리면 멈춘다. 류단은 어이가 없어 잠시 말문을 잃었다. “본인 집을 털라고요?” 젊은 당소령이 돌아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했죠?” “아닙니다. 머릿속 손님이 좀 과격해서.” “독이 머리까지 올랐습니까?” “그럴 가능성도 검토 중입니다.” 미래의 당소령이 쏘아붙였다. —가문은 환자보다 비방을 택할 거야. 내가 겪었다. 그 기억이 류단에게 닿았다. 스물한 살의 당소령이 밤마다 자신의 팔에 작은 상처를 내고 독을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약방에는 완성되지 않은 처방들이 쌓였고, 오라비 당준은 비방이 창천문으로 새면 가문 전체가 끝난다고 경고했다. 그녀는 혼자 증명하려 했다. 결국 살아남았으나 손끝의 감각을 잃었고, 그 비밀은 타인에게 약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지금의 젊은 당소령이 아니었다. “당 의원.” 류단이 물었다. “완성 처방을 공개할 수 있습니까?” 그녀의 얼굴이 닫혔다. “당가의 비방입니다.” “사람이 죽어도요?” 젊은 백무결이 날카롭게 물었다. “당신 문파는 검보를 장터 벽에 붙여 둡니까? 독을 치료하는 법은 독을 만드는 법과 맞닿아 있어요. 완성 처방이 퍼지면 녹맥독보다 더 나쁜 것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백무결이 입을 열려 하자 류단이 먼저 말했다. “전부 달라는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지금 필요한 건 시장에서 같은 증상이 나왔을 때 누구나 시행할 수 있는 응급 순서입니다. 독의 배합이나 완성 해약은 당가가 지켜도 됩니다. 사람을 밤까지 살려 두는 방법만 내놓으십시오.” 젊은 당소령은 즉답하지 않았다. 마영순이 죽 한 그릇을 들고 헛간에 들어왔다. “논쟁 끝났으면 환자 밥 먹여.” “지금은 장부가 예민해서—” “그래서 흰죽 끓였어. 먹으면 안 되면 네가 먹고.” 젊은 당소령은 죽의 농도를 살피고 한 숟갈 떠 냄새를 맡았다. “소금을 아주 조금만 더 넣고 두 숟갈씩 먹이세요. 한 번에 많이 주면 토합니다.” 마영순이 류단에게 그릇을 건넸다. “들었지?” 그녀는 비방을 요구하지도, 당가의 권리를 논하지도 않았다. 지금 먹일 양을 정했다. 젊은 당소령은 그 모습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약상자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미래의 당소령이 다급하게 말했다. —막아. 저건 자가 시험용이다. 내가 먼저 독을 받아 변화를 확인하면 처방을 고칠 수 있어. 실제로 젊은 당소령은 자기 소매를 걷고 있었다. 류단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안 됩니다.” “놓으세요. 소량을 피부에 묻혀 반응을 보면 결합제의 성질을—” “환자가 하나 있는데 왜 둘로 늘립니까?” “제가 가장 빨리 알 수 있어요.” “그러다 쓰러지면 누가 처방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있었다. 가족의 비밀을 지키고 사람도 구해야 한다는 부담. 누구에게도 완전히 맡길 수 없으니 자기 몸을 중간에 놓는 습관. 미래의 독왕은 그것을 냉정함이라 기억했지만, 류단의 눈에는 젊은 의원의 다급한 책임감이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오각의 몸에서 이미 일어나는 변화를 보십시오. 새 독을 만들지 말고 살아 있는 환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통증을 더 주자는 겁니까?” “아니요. 소변과 땀, 체온을 시간별로 기록합시다. 현재 표본을 기름과 열에 따로 시험하고요. 창천문은 사람을 보내 같은 기름이 유통됐는지 확인하십시오.” 남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 기름상 명부를 조사하겠습니다.” 젊은 백무결이 말했다. “내가 창고를—” “백 사제.” 남소군이 조용히 불렀다. 전날 받은 위임이 아직 유효했다. 젊은 백무결은 잠시 굳었다가 물러났다. “경로는 남 사형이 정하십시오. 나는 호위하겠습니다.” 미래의 백무결은 그 문장을 다시 듣듯 잠시 눈을 감았다. 검사는 한 시진 동안 이어졌다. 젊은 당소령은 오각의 땀을 종이에 받아 색 변화를 비교했다. 류단은 화로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했고, 마영순은 쓰인 잔마다 숫자를 붙였다. 백무결은 남소군의 지시에 따라 시장에서 가져온 기름 표본을 호송했다. 세 번째 기름에서 접시에 남은 녹맥독 잔여물이 풀렸다. 열을 가하자 연두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젊은 당소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식용유에 섞어 운반하려는 게 아니에요. 기름을 데울 때 독기를 퍼뜨리려는 겁니다.” “시장에 이미 들어갔을 수 있군.” 백무결이 말했다. “아직 저녁 장 전입니다.” 류단이 답했다. “응급 절차부터 만드십시오.” 젊은 당소령은 종이를 펼쳤다. 붓끝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 말이 도착했다. 당가 문양을 단 사내가 봉서를 내밀었다. 젊은 당소령이 읽자 표정이 굳었다. “오라버니께서 표본과 환자를 즉시 의원으로 옮기고, 창천문에는 어떤 처방도 공개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미래의 당소령이 씁쓸하게 말했다. —봐. 변하지 않아. 류단은 젊은 그녀에게 봉서를 돌려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래를 말해 겁줄 수도 있었다. 당신이 이대로 혼자 시험하다 손을 망친다고. 가족이 치료법을 지키려다 더 큰 독왕을 만든다고.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삶의 결론이었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명령이 아니라 선택이 필요했다. 젊은 당소령은 오각을 보았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죽을 떠먹고 있었다. “완성 해독방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백무결이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노출 직후의 냉각, 격리, 호흡 유지, 금지 약재, 그리고 의원에게 넘기기 전까지의 맥 조절법은 공개하겠습니다. 녹맥독의 배합비와 역산 가능한 약재량은 뺍니다. 처방 소유권은 당가에 남기고, 응급 절차의 변경도 당가 의원이 승인해야 합니다.” 류단이 물었다. “누가 보관합니까?” “당가 한 부, 창천문 한 부.” 마영순이 주판알을 튕겼다. “그러면 둘이 싸울 때 아무도 못 쓰겠네.” 젊은 당소령이 그녀를 보았다. “귀래객잔에 한 부를 두겠습니다. 두 집안의 봉인을 함께 찍고, 긴급할 때는 마 객주가 열 수 있게 하죠.” “내가 왜?” “여기서 환자를 살렸으니까요.” “보관료 낼 거냐?” 젊은 백무결이 한숨을 쉬었다. “창천문이 절반을 내겠다.” “왜 절반이죠?” 젊은 당소령이 따졌다. “환자 치료는 우리가—” “나머지 절반을 내라는 뜻이다.” “그건 우리 가주께 물어봐야 해요.” 마영순이 종이를 걷어 갔다. “돈 얘기는 내가 한다. 너희는 사람 살리는 글부터 써.” 젊은 당소령은 결국 붓을 들었다. 그녀가 첫 줄을 쓰는 순간, 류단 안의 두 번째 핵이 온전히 맥박쳤다. 차갑고 섬세한 기운이 단전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그의 것은 아니었다. 일곱 심박 동안 길을 빌릴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릴 때보다 훨씬 선명했다. 미래의 당소령은 어린 자신이 쓰는 글을 말없이 보았다. —나는 약해서 숨긴 게 아니었군. 류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키려는 게 너무 많아서 혼자 들었던 거야. “그걸 아는 것도 의술입니까?” —적어도 독은 아니겠지.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오각이 스스로 일어섰다. 다리는 떨렸지만 두 발로 헛간 문턱을 넘었다. “걸을 수 있겠냐?” 류단이 물었다. “열 냥 갚으려면 걸어야지.” 마영순이 뒤에서 말했다. “약값 붙어서 열두 냥이다.” 오각은 다시 쓰러질 뻔했다. 젊은 당소령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직 멀리 가면 안 됩니다. 대신 창고 종소리와 출입구를 정확히 말하세요.” 오각은 서쪽 문, 대들보 장부,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로를 설명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고개를 저었다. “내가 살아난 걸 알면 이미 다 옮겼을 거야. 장 부두목은 같은 길을 두 번 안 써.” 실패한 미래의 창고 배치도 더는 확실하지 않았다. 밖에서 정찰 제자가 뛰어들어 왔다. “동쪽 창고에서 수레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장 부두목이 인부들을 안에 모아 두고, 푸른 띠를 맨 통부터 서쪽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젊은 백무결이 검을 집었다. “즉시 친다.” 젊은 당소령이 막아섰다. “독 통을 칼로 깨면 시장 전체가 위험해요. 먼저 격리선을 세워야 합니다.” “늦으면 수레가 빠져나간다.” “서두르면 인부들이 죽습니다.” 두 사람 뒤에서 미래의 두 잔향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지휘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의료 판단이 우선이다. 류단은 네 사람의 목소리 사이에서 창고 지도를 펼쳤다. 정확하지 않은 미래, 현재의 증상, 살아남은 오각의 정보, 남소군이 조사한 길이 한 장 위에 놓였다. “둘이 다 맞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 맡으면 안 됩니다.” 그는 서쪽 출구를 남소군에게, 독 통과 인부를 젊은 당소령에게, 내부 함정선을 젊은 백무결에게 짚어 주었다. “지도는 누가 들지?” 남소군이 물었다. “제가 듭니다.” 마영순이 류단의 오른손을 보았다. “너, 또 그 이상한 힘 쓸 생각이냐?” “가능하면 안 쓰겠습니다.” “가능하지 않으면?” 류단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세 번만 심장이 뛸 때까지 쓰겠습니다.” 마영순은 그의 허리띠를 잡아당겨 매듭을 다시 묶었다. 열쇠 꾸러미를 확인하듯 단단히. “살아서 돌아와. 그리고 내 쟁반 가져가.” “무기로 쓰라고요?” “빌려주는 거야. 찌그러뜨리면 돈 내.” 류단은 쟁반을 받았다. 창고 쪽에서 종이 한 번 울렸다. 원래 죽었어야 할 사람이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출발 신호다.” 오각이 말했다. 이번에는 검과 약과 길이 따로 움직였다. 그리고 류단은 그 사이의 무게를 들었다. 제5화. 둘이 들고 하나가 여는 문 동쪽 창고에는 문이 셋이었다. 오각은 서쪽 문으로 물건이 나간다고 했다. 류단이 실패한 미래에 폐허를 조사했을 때는 남쪽 벽에 큰 수레문이 있었다. 남소군의 정찰은 북쪽 골목에 새로 뚫은 쪽문을 찾아냈다. 셋 다 맞을 수 있었고, 셋 다 함정일 수 있었다. “서쪽과 북쪽 길은 내가 막는다.” 남소군이 말했다. “수레가 나오면 바퀴부터 묶되 통은 건드리지 마라. 민가 쪽으로 달아나면 사람을 쫓지 말고 길을 비운다.” 창천문 제자들이 짧게 대답했다. 명령은 분명했고 목적은 체포가 아니라 통의 안전이었다. 젊은 당소령은 그들 손목에 흰 천을 감았다. “이 천이 노랗게 변하면 숨을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즉시 바람을 거슬러 물러나세요. 어지러운 사람은 검을 놓고 앉습니다. 영웅답게 버티다 쓰러지면 제가 먼저 때릴 겁니다.” 젊은 백무결이 창고 지붕과 벽의 높이를 살폈다. “나는 내부의 함정과 무장 인원을 맡겠다. 당 의원의 허락 없이는 통을 베지 않는다.” “허락해도 베지 마세요.” “내용물 확인이 필요할 때는?” “의원이 엽니다.” “그럼 검은 왜 가져왔나?” “사람이 통보다 말을 안 들을 때 쓰세요.” 미래의 백무결과 당소령이 류단의 머릿속에서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저렇게 사이가 나빴나? 두 잔향이 동시에 말했다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류단은 웃을 겨를이 없었다. 창고 안에서 나오는 수레는 아직 없었다. 종은 한 번 울렸는데, 출발 신호 뒤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우리가 온 걸 압니다.” 오각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 부두목은 기다리는 놈이 아니야. 먼저 움직였을 거다.” “당신은 여기 남으십시오.” “길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어제까지 걷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입은 걷잖아.” 마영순에게 열두 냥 빚진 뒤 오각은 쓸모를 증명하려 애썼다. 류단은 그를 전투에 데려갈 생각이 없었지만, 입까지 버릴 필요는 없었다. “남 대협 곁에서 종 신호만 해석하십시오. 칼은 들지 마시고.” 오각이 포권 흉내를 냈다. “점소이 대협의 명을 받들지.” “대협 한 번에 한 냥씩 갚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취소.” 남소군이 웃음을 감추며 그를 데려갔다. 류단, 젊은 백무결, 젊은 당소령은 남쪽 수레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는 열려 있었다. 류단이 실패한 미래에 보았던 것보다 문짝이 두껍고, 바닥의 홈은 새것이었다. 미래의 백무결이 말했다. —문 위에 낙검진이 있다. 철사를 끊으면 천장에서 칼이 떨어진다. 류단은 위를 보았다. 대들보 사이에 가느다란 철사가 있었다. 그러나 먼지가 쌓인 정도가 달랐다. “예전과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기본 구조는 같다. 오른쪽 기둥의 세 번째 못을 뽑아라. 젊은 백무결이 먼저 손을 들었다. “기다려. 세 번째 못은 가짜다.” 그는 기둥 아래의 나뭇결을 짚었다. “최근에 기둥을 덧댔다. 힘이 걸리는 곳은 다섯 번째 못이다.” 미래의 백무결이 말없이 살폈다. 류단은 젊은 백무결이 가리킨 못을 쟁반 끝으로 눌렀다. 문 위에서 쇠붙이 스치는 소리가 났지만 칼은 떨어지지 않았다. 젊은 백무결이 류단을 보았다. “누가 세 번째라고 했나?” “기억이 오래된 손님입니다.” “틀렸군.” 마음속 백무결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내가 아니라 함정이 바뀐 거다. 당소령의 잔향이 웃었다. —그 말을 틀렸다고 하는 거야. 문이 열렸다. 안에는 독 통이 없었다. 대신 밧줄에 묶인 인부 스무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이 같은 얼굴도 있었고, 흑아방 문신을 한 자도 있었다. 그들 뒤에 장 부두목이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왼쪽 뺨을 가로지른 흉터 때문에 입이 늘 웃는 것처럼 비뚤어졌다. “더 들어오면 불붙인다.” 바닥에는 기름이 얕게 깔려 있었다. 녹맥독이 섞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험할 여유도 없었다. 젊은 백무결의 검이 반쯤 뽑혔다. “횃불을 버려라.” “백 도련님이 통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날도 있군.” 장 부두목이 비웃었다. “우리가 어제부터 물건을 옮겼다고 생각했지? 너희가 싸우는 동안 이미 반은 시장으로 갔다.” 젊은 당소령의 얼굴이 굳었다. 류단은 장 부두목 뒤의 벽을 보았다. 실패한 미래에는 없던 경사 통로가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푸른 띠를 맨 통 세 개가 그 아래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밧줄과 도르래가 저절로 움직였다. “인부들이 당기는 게 아니군요.” 장 부두목의 웃음이 멎었다. 바닥 아래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왔다. 벽에는 서로 다른 세 무공의 기운을 감지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창천문 계통의 검기, 흑아방의 거친 내력, 그리고 정체 모를 차가운 기운이 하나의 도르래를 돌렸다. 미래의 백무결이 말했다. —혼합진이다. 내가 아는 낙검진이 아니야. 당소령의 잔향도 짧게 답했다. —독 통이 움직이면서 내용물을 섞어. 깨지면 이 안의 모두가 중독된다.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류단은 현재를 보았다. 장 부두목의 횃불은 오른손. 왼발은 기름이 없는 돌 위에 놓였다. 젊은 백무결과 거리는 일곱 보. 당소령은 인부들에게 닿기까지 열두 보. 지하 통로의 도르래는 세 번에 한 번씩 걸렸다. “백 소협. 횃불만 맡으십시오. 장 부두목을 잡으려 하지 마세요.” “도망치게 두라고?” “당 의원. 횃불이 떨어지는 순간 인부들을 바람 드는 남쪽으로 빼십시오. 밧줄부터 자르지 말고 사람 몸을 확인하고요.” “당신은요?” “통을 세우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미친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장 부두목이 횃불을 기울였다. 젊은 백무결이 움직였다. 검광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장 부두목은 예상하고 인부 하나를 방패처럼 잡아당겼다. 그러나 백무결의 검은 사람도 팔도 노리지 않았다. 검풍이 횃불의 불꽃만 베어 냈다. 불이 꺼졌다. 동시에 젊은 당소령의 손에서 은침 여섯이 날아가 인부들을 묶은 밧줄의 매듭을 끊었다. 그녀는 가장 어린 인부의 코와 입을 천으로 막고 남쪽 문으로 밀었다. 류단은 지하 통로로 뛰었다. 뒤에서 장 부두목이 욕설을 내뱉고 도망쳤다. 젊은 백무결의 발이 그를 향해 한 번 움직였다가 멈췄다. 맡은 일은 횃불이었다. 그는 추격 대신 남은 불씨를 밟아 껐다. 경사로 아래에서 푸른 띠 통 하나가 기울었다. 통 둘레의 쇠고리가 진의 홈에 걸려 있었다. 억지로 빼면 깨진다. 류단은 양손으로 통을 받쳤다. 내용물이 출렁이며 한쪽으로 쏠렸다. —왼쪽 홈을 검기로 끊어. —안 돼. 충격이 가면 안에서 독기가 솟아. 두 미래가 충돌했다. 류단은 자신의 몸을 믿었다. 열두 해 동안 큰 술동이를 굴리고, 계단에서 국통을 나르고, 취객이 엎은 상을 살려 온 몸. 그는 백무결과 당소령, 두 핵을 함께 열었다. 첫 번째 공유 심박. 검의 구조가 통과 홈 사이의 힘줄을 보여 주었다. 의술의 흐름이 액체가 어디로 쏠리는지 알려 주었다. 두 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류단의 경맥을 잡아당겼다. 그는 통을 들지 않았다.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오른발을 반 걸음 내디뎠다. 무게를 허리로 받고, 쟁반을 통 아래에 끼워 접점을 옮겼다. 두 번째 심박. 진법이 외부의 두 기운을 감지했다. 벽의 문양이 붉게 빛났다. 한 계통이 다른 계통을 밀어내면 함정이 폭발한다. 류단은 밀지 않았다. 백무결의 날카로운 기운을 홈의 걸린 쇠고리에 흘리고, 당소령의 가느다란 기운을 통 안 액체의 반대 회전에 맞췄다. 서로 섞지 않고 서로의 다음 자리를 만들었다. 통이 수평을 찾았다. 세 번째 심박.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두 핵을 함께 쓰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과부하였다. 류단은 통에서 받은 무게를 왼발로 넘겼다. 다시 한 걸음. 기울어진 쟁반을 살릴 때와 같았다. 다만 쟁반 위에 사람 스무 명의 목숨이 올라가 있었다. “회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돌아오는 쟁반. 받은 힘을 지우지 않고 다음 발로 돌려보내는 걸음. 통이 쇠홈에서 빠졌다. 벽의 혼합진은 공격받지 않았다. 대신 들어온 두 기운이 서로 다른 길로 지나가자 도르래의 회전을 거꾸로 돌렸다. 아래로 내려가던 나머지 통 두 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경사로 바닥이 갈라졌다. 그 균열 안쪽으로 귀래객잔 지하와 같은 일곱 별의 맥이 번쩍였다. 류단은 통을 끌어안고 옆으로 굴렀다. 찢어지는 통증이 오른팔에서 가슴까지 번졌다. 경맥 어딘가가 터졌다. 입안에 피 맛이 났다. 갈라진 바닥 아래에서 돌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는 일곱 별과 빈 계산대가 새겨져 있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멀리 귀래객잔 쪽으로 이어진 진맥이 한 번 울렸다. 돌문은 한 치 열렸지만, 그 너머의 관리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언가가 류단을 살피는 기척은 창고 아래가 아니라 진맥의 반대편, 귀래객잔 지하에서 되돌아왔다. 지배하려 했는가, 아니면 이어 주었는가. 말 없는 질문처럼. 그리고 돌문은 멈췄다. 류단은 그 정체를 확인할 힘이 없었다. 그는 통이 깨지지 않았는지만 먼저 보았다. “살아 있어요?” 젊은 당소령이 달려 내려왔다. “통이요, 저요?” “통이 대답할 수 있으면 당신부터 버리고 통을 치료하죠.” 그녀가 류단의 손목을 잡았다. 얼굴이 즉시 굳었다. “두 종류의 내력을 동시에 썼군요. 경맥에 작은 파열이 있습니다.” 미래의 당소령이 분노했다. —내가 분명 세 심박이라고 했지, 죽기 직전까지 쓰라고는 안 했어. 미래의 백무결이 낮게 말했다. —내가 추격을 명했어야 했다. “안 하셨습니다.” 류단이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이번에는.” 젊은 백무결은 장 부두목 대신 인부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장 부두목은 사라졌지만 사람은 모두 살아 있었다. 남소군도 북쪽 통로를 장악했다. 도망치던 수레 둘을 바퀴만 묶어 세웠고, 오각이 종을 거꾸로 쳐 흑아방 하급자들을 빈 골목으로 유인했다. 붙잡힌 자들 대부분은 돈을 받고 짐을 나른 일꾼이었다. 독의 정체를 아는 이는 셋뿐이었다. “장 부두목은?” 류단이 물었다. 젊은 백무결이 검을 닦으며 말했다. “놓쳤다.” “후회합니까?” “한다. 하지만 쫓았으면 횃불의 불씨가 남았을 거다.” 미래의 백무결이 그 말을 들었다. —저 선택을 기억하지 못한다. “새로 생긴 일이니까요.” 창고의 대들보에서는 오각이 말한 세 번 접힌 장부가 나왔다. 그러나 구매자 이름이 적힌 장은 칼로 잘려 있었다. 남은 면에는 서부 산악로에서 쓰는 규격 표시와 같은 문양이 반복돼 있었다. 저울 하나, 곡물 한 포, 칼 한 자루가 모두 같은 치수선 안에 들어간 표식. 젊은 당소령이 푸른 띠 통의 밑바닥에서도 같은 표식을 찾았다. “독뿐 아니라 통과 수레까지 같은 규격으로 만들었어요.” 남소군이 말했다. “흑아방 같은 동네 패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벽에 붙은 종이 한 장에는 낯선 문구가 잘린 채 남아 있었다. 일천일율. 한 하늘, 한 기준. 그 말은 질서처럼 들렸고, 명령처럼도 들렸다. 류단은 실패한 미래의 천마신교를 떠올렸다. 그들은 강해서만 이긴 것이 아니었다. 다른 문파가 독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투는 동안 통의 크기와 길과 신호를 통일했다. 능력 있는 평민에게 무공을 가르쳤고, 그 대가로 모든 무공을 하나의 지휘 아래 묶었다. 이번 창고에도 이미 그 장점과 강제가 함께 들어와 있었다. 남소군이 현장 기록판을 펼쳤다. “압수품과 포로를 창천문으로 이송하겠다.” 젊은 당소령이 바로 말했다. “독 통과 중독자는 당가가 맡습니다.” 같은 싸움이 다시 시작될 찰나, 젊은 백무결이 두 사람 사이에 기록판을 놓았다. “경로와 포로 호송은 남 사형이 맡습니다. 독 통과 환자의 처리는 당 의원이 결정합니다. 압수 목록은 둘이 함께 서명하고, 원본은 귀래객잔에 둡니다.” 그는 류단을 보지 않고 덧붙였다. “사흘 합의가 끝날 때까지.” 젊은 당소령이 잠시 그를 살피다가 붓을 들었다. “독 통을 임의로 열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으세요.” “당가도 증거 일부를 빼돌리지 않는다.” “당연한 말을 굳이 쓰는군요.” “당연한 것은 쓰지 않으면 가장 먼저 사라지니까.” 미래의 백무결이 조용히 말했다.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닌데. 당소령의 잔향이 답했다. —그러니 잘 들어 둬. 창고 밖에서 급한 종소리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짧게 세 번. 오각의 얼굴이 변했다. “거짓 철수 신호다. 장 부두목이 남은 놈들을 부르는 거야.” 곧 북쪽 골목에서 주민 하나가 뛰어왔다. “시장 기름집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누가 기름통에 물을 부었는데 연기가—” 젊은 당소령이 압수 통을 보았다. “이미 시장에 들어간 기름이 있어요.” 남소군이 지도를 펼쳤다. 젊은 백무결은 검을 들었다. 모두가 류단을 보았다. 류단은 일어서려다 무릎을 꿇었다. 가슴 안쪽이 찢어지는 듯했다. 두 핵을 다시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온전한 밤을 쉬기 전에는. 그는 피 묻은 손으로 기록판을 짚었다. “저를 보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눈이 흔들렸다. “이미 맡은 일을 하세요. 남 대협은 길, 당 의원은 치료, 백 소협은 거짓 종을 끊으십시오. 저는 귀래객잔으로 돌아가 전체 신호를 맞추겠습니다.” “그 몸으로?” 젊은 당소령이 쏘아붙였다. “뛰지는 않겠습니다.” “걷는 것도 금지예요.” 마침 멀리서 마영순의 짐수레가 나타났다. 객잔에서 빈 물통과 천을 싣고 온 것이었다. 고삐를 잡은 마영순이 류단의 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쟁반값부터 물어.” 류단은 찌그러진 쟁반을 품에 안고 웃었다. “사람은 모두 살렸습니다.” “그래서 네 몸은 사람에서 뺐냐?” 그녀는 류단을 수레에 밀어 넣고, 압수 목록을 낚아챘다. “시장으로 갈 거면 내 객잔을 지휘소처럼 쓰지 마. 열쇠와 장부와 비용은 내가 정한다.” 류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돌아가는 겁니다.” 귀래객잔이 처음으로 전쟁의 한가운데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의 허락 없이는 문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제6화. 첫 번째 공동 장부 귀래객잔의 계산대 위에는 네 종류의 종이가 놓였다. 남소군이 그린 시장 골목 지도. 젊은 당소령이 쓴 녹맥독 응급 절차. 오각이 기억하는 흑아방 종 신호. 그리고 마영순의 비용 장부. 그중 가장 두꺼운 것은 비용 장부였다. “깨끗한 물 한 통에 세 문, 삶은 천 한 묶음에 두 문, 환자 눕힐 멍석은 보증금 별도.” 젊은 백무결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사람들이 죽을 수 있는데 돈부터 받겠다는 겁니까?” “돈은 나중에 받아. 지금 적어 두는 거지.” “왜 지금 적습니까?” “나중에 너희 둘 다 자기가 더 많이 냈다고 싸울 테니까.” 젊은 당소령이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충분히 가능한 미래였다. 류단은 계산대 옆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젊은 당소령이 앉혀 두었다. 일어나려 할 때마다 그녀가 손등에 침을 겨누었다. 조금 전 창고에서 두 핵을 함께 연 탓에 가슴과 오른팔의 경맥이 찢어져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뜨거운 철사가 몸 안을 긁었다. 미래의 당소령이 그의 맥을 류단의 감각으로 살폈다. —오늘은 두 핵 모두 닫혔어. 억지로 열면 경맥부터 끊어진다. 미래의 백무결이 시장 지도를 보며 말했다. —내 기억으로 종루의 동선을 읽을 수는 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내가 직접 베겠다는 뜻이 아니라 가능성을— —죽은 뒤에도 환자 말을 안 듣네. 류단은 두 목소리를 뒤로 밀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장 강한 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장에는 골목이 여섯 개였다. 이미 연기가 난 기름집은 둘. 저녁 장이 시작되기까지 반 시진도 남지 않았다. 장 부두목의 수하들이 거짓 대피 종을 울리면 군중은 독기 없는 길에서 독기 있는 길로 몰릴 수 있었다. “모든 골목에 같은 경고를 보내면 안 됩니다.” 류단이 말했다. “지금 사람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그는 원래의 미래를 기억했다. 사태가 끝난 뒤 직접 시신을 거두고 사망 장부를 썼다. 북쪽 포목전 앞에서 열둘, 남쪽 국밥거리에서 스물셋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창고 습격 소문 때문에 구경꾼들이 동쪽으로 몰렸다. 오각이 살아남아 흑아방 인부 몇을 빼냈고, 창천문 제자들이 먼저 길을 막았다. 죽은 사람의 위치는 기억해도 지금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자리는 대신 셀 수 없었다. 남소군이 지도를 짚었다. “청의 제자 셋을 북쪽, 둘을 남쪽에 보내겠다.” 젊은 백무결이 말했다. “동쪽이 가장 혼잡하다. 내가 가서 군중을 가르겠다.” “백 사제는 중앙 종루를 맡아라.” “남 사형.” “경로 지휘는 내게 맡겼다.” 젊은 백무결의 턱이 굳었다. 미래의 잔향도 같은 순간에 같은 표정을 지었다. 류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임이 진짜가 되려면 불편할 때도 작동해야 했다. 젊은 백무결이 끝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중앙 종루의 거짓 신호를 끊고, 남 사형의 신호만 전달하겠습니다.” 미래의 백무결이 그 장면을 오래 보았다. —나는 남 사형에게 맡겼다가 실패하면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책임을 지는 것과 일을 빼앗는 것은 다릅니다.” —이제는 안다. 젊은 당소령은 응급 절차를 세 장으로 나누었다. “첫 장은 일반인이 할 일. 불 끄기, 바람을 거슬러 이동, 찬물로 피부 씻기. 둘째는 의원 보조가 할 일. 체온과 호흡 확인, 토사물 격리, 금지 약재. 셋째는 당가 의원만 하는 해독 절차예요.” “첫 장과 둘째 장을 몇 부 만들 수 있습니까?” 류단이 물었다. “손으로 베끼면 늦어요.” 마영순이 계산대 아래에서 나무판 둘을 꺼냈다. 객잔의 오늘 반찬과 방값을 찍는 목판이었다. 한쪽은 글자가 거의 닳아 있었다. “뒷면 써.” “여기에 새기면 계속 남습니다.” 젊은 당소령이 말했다. “그러라고 내놓은 거야.” “당가의 허락을 아직—” “네가 당가 의원 아니냐?” 젊은 당소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족의 명령은 비방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쓰려는 내용은 완성 해독방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응급 절차였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녀는 칼을 받아 목판에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미래의 당소령이 낮게 말했다. —저렇게 공개했으면 내 오라비와 크게 싸웠겠지. “후회합니까?” —아니. 싸움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게 후회돼. 마영순은 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종이와 먹을 준비했다. 목판이 완성되자 객잔 심부름꾼들과 창천문 제자들이 찍어 낸 종이를 각 골목으로 가져갔다. 당가의 약상자에는 첫 장과 둘째 장을 나누어 넣었다.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없도록 정보와 물건이 흩어졌다. 그때 시장 쪽에서 종이 울렸다. 길게 두 번, 짧게 한 번. 오각의 얼굴이 굳었다. “북쪽으로 피하라는 흑아방 신호다. 거짓말이야. 북쪽 기름집이 먼저 오염됐어.” 남소군이 즉시 명령을 바꿨다. “북쪽 인원을 서쪽 우물길로 돌린다. 창천문 신호는 짧게 세 번, 멈추고 한 번이다.” 젊은 백무결이 종루로 달렸다. 젊은 당소령은 약상자를 둘로 나누어 보조 의원에게 하나를 넘겼다. “나는 남쪽 국밥거리로 가요. 당신은 북쪽 포목전. 환자 구분은 절차대로 하고, 심한 사람부터 객잔으로 보내세요.” “당 소저 없이 해독을—” “둘째 장까지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셋째 장이 필요한 환자만 표식을 붙이세요.”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객잔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영순, 류단, 오각, 그리고 복사물을 나르는 아이 둘만 남았다. 류단이 일어서려 하자 마영순이 어깨를 눌렀다. “넌 앉아.” “중앙 골목 상황을 봐야 합니다.” “가서 뭘 할 건데?” “장 부두목을 잡으면—” “잡은 뒤에 나머지 다섯 골목은 누가 보냐?” 류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실패한 미래의 그는 늘 강한 사람을 기다렸다. 백무결이 오면 길이 열리고, 당소령이 오면 독이 풀릴 거라고. 이제 강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고, 그 사이를 잇는 일은 계산대에 남아 있었다. “여기 있겠습니다.” 마영순이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래. 점소이는 자리를 지켜야지.” 첫 환자들이 들어왔다. 눈이 충혈된 기름상 부부와 기침하는 아이였다. 오각은 문밖에 오염 구역을 표시하고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웠다. “밀지 마! 숨 쉬는 놈부터 들어가고, 숨 안 쉬는 놈은 먼저 보여 줘!” “그 말 순서가 이상합니다.” 류단이 지적했다. “알아들으면 됐지!” 마영순은 안쪽 식당을 치료 구역, 뒤뜰을 세척 구역으로 나눴다. 각 문에 다른 색 천을 걸고 열쇠를 직접 관리했다. 창천문 제자가 환자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문을 잠가 버렸다. “왜 막습니까?” “저기는 깨끗한 물 보관소다. 환자는 동문으로.” “급합니다!” “급할수록 물통에 독 묻히지 마.” 시장에서는 신호가 계속 들어왔다. 창천문 제자가 가져온 나무패, 당가 보조가 보낸 환자 수, 상인들이 직접 외친 골목 상황. 정보는 서로 형식이 달랐다. 류단은 객잔 주문을 정리하듯 한 장에 옮겼다. 북쪽, 중증 셋. 서쪽 우물길 열림. 남쪽, 불 꺼짐. 환자 일곱 이동 중. 동쪽, 군중 정체. 거짓 종 치는 자 이동. 오각이 갑자기 계산대 위 지도를 짚었다. “장 부두목은 종루에 없어. 저놈은 남이 자길 쫓는 걸 보고 싶어 해. 종루에서 도망치는 놈은 미끼고, 본인은 기름 수레 근처에 있을 거야.” “어떻게 압니까?” “그 밑에서 칠 년 살았으니까.” 현재의 증거였다. 류단은 동쪽에서 온 나무패를 다시 보았다. 빈 기름 수레 하나가 중앙으로 이동 중. 마부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다. “마차에 마지막 통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젊은 백무결이 종루의 미끼를 붙잡았다는 신호가 왔다. 류단이 직접 달려가면 장 부두목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면 신호가 끊긴다. 그는 오각에게 흑아방의 작은 손종을 건넸다. “잡을 수 있겠습니까?” 오각이 손종을 보았다. “어제까지 내가 그쪽이었는데?” “그래서 맡기는 겁니다.” “도망가면?” “열두 냥 빚이 남습니다.” “지옥까지 받아 내겠구나.” 오각은 웃고는 아이 하나를 불렀다. “종루에 있는 백 도련님한테 가서 큰 종을 한 번만 울리라 해. 창고 철수 신호처럼 길게.” 류단이 뜻을 알아차렸다. 장 부두목은 자기 조직의 신호가 울리면 미끼가 성공했다고 믿을 것이다. 큰 종이 길게 한 번 울렸다. 중앙으로 향하던 빈 수레가 즉시 동쪽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는 남소군이 세운 차단조가 있었다. 오각은 반대편에서 손종을 두 번 쳤다. 흑아방 집결 신호였다. 숨어 있던 잔당들이 수레로 몰렸고, 장 부두목이 마부석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수레는 멈추지 않았다. 장 부두목이 마지막 발악으로 기름통 마개에 불씨를 던졌다. 남소군이 마부를 끌어내렸지만 불씨는 통 입구에 붙었다. 수레는 비탈을 타고 사람들로 가득한 객잔 쪽으로 굴러왔다. “피해!” 오각이 사람들을 밀어냈다. 류단은 계산대에서 일어섰다. 두 핵은 모두 닫혀 있었다. 창고에서 세 심박을 함께 쓴 순간 오늘 빌릴 수 있는 길은 끝났다. 지금 억지로 문을 열면 수레보다 그의 경맥이 먼저 터진다. 그래도 기억은 남아 있었다. 기름에 물을 들이부으면 독액이 튄다는 당소령의 지식. 굴러오는 것을 정면에서 받지 말라는 백무결의 구조. 그리고 기울어진 무게를 다음 발로 넘기는, 누구에게도 빌리지 않은 자신의 걸음. 마영순이 세척 구역에서 젖은 멍석을 끌어냈다. 류단은 아홉 해 동안 비어 있던 계산대가 아니라, 두 발로 선 그녀의 어깨를 보았다. “불부터 덮어!” 류단은 쟁반을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수레 옆으로 붙어 쟁반을 바퀴와 돌 사이에 비스듬히 끼웠다. 정면에서 막지 않고 회반보의 첫걸음으로 굴러오는 힘을 옆으로 받았다. 가슴의 상처가 비명을 질렀다. 쟁반이 휘며 바퀴의 방향을 반 치 틀었다. 류단은 그 힘을 허리로 받아 다음 발로 넘겼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수레가 객잔 정문을 비껴 빈 물통 쪽으로 향했다. 마개에 붙은 불씨가 바람을 먹고 커졌다. 류단은 물통을 보지 않았다. 대신 마영순이 던진 젖은 멍석을 쟁반으로 받아 올렸다. 회전하는 쟁반이 멍석을 펼쳐 마개 위에 덮었다. 불씨가 검은 연기를 토하다 꺼졌다. 수레가 물통 더미에 부딪쳐 멈췄다. 통은 깨지지 않았다. 그는 두 무릎을 땅에 짚었다. 입가로 피가 흘렀지만 의식은 선명했다. 젊은 당소령이 남쪽 골목에서 달려와 그를 보자마자 손목을 잡았다. “핵은 안 썼군요.” “말씀대로 했습니다.” “대신 찢어진 경맥으로 수레를 밀었네요.” 미래의 당소령도 똑같이 쏘아붙였다. —말을 들을 거면 끝까지 들어야지! 류단은 아픈 와중에도 웃음이 났다. “두 분이 꽤 닮으셨습니다.” 젊은 당소령은 무슨 말인지 몰라 더 화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시장의 불은 모두 꺼졌다. 중증 환자 아홉은 당가 의원으로 이송됐고, 경증 환자 스물여섯은 응급 절차로 안정됐다. 죽은 사람은 없었다. 장 부두목과 독의 유통을 아는 세 명이 붙잡혔다. 오각은 장 부두목의 손에 칼이 들려 있는데도 끝까지 종을 놓지 않았다. 밤이 깊자 귀래객잔 식당에 다시 탁자가 놓였다. 젊은 백무결, 남소군, 젊은 당소령, 마영순이 마주 앉았다. 류단은 붕대를 감은 채 계산대 옆에 있었다. 탁자 위에는 새 장부가 펼쳐져 있었다. 첫 장에는 응급 절차의 공개 범위가 적혔다. 둘째에는 독 표본과 서부 규격 표식의 목록. 셋째에는 창천문 호송로와 당가 보충 약재의 책임. 마지막에는 긴급 상황에서 마영순이 두 봉인 가운데 하나가 없어도 장부를 열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대신 사용 시각, 수량, 수령인을 반드시 기록해야 했다. “창천문이 호위 두 명을 순번제로 보낸다.” 젊은 백무결이 적었다. “당가는 해독 약재를 매달 확인하고 부족분을 채웁니다.” 젊은 당소령이 덧붙였다. 남소군은 세 개의 안전 경로와 신호를 기록했다. 마영순은 마지막 줄에 보관료, 방값, 종이값을 썼다. “너무 비쌉니다.” 젊은 백무결이 말했다. “천하의 검법은 안 깎으면서 종이값은 깎으려 들어?” “검법과 종이는—” “둘 다 없으면 사람 죽기는 마찬가지더라.” 젊은 당소령이 먼저 도장을 찍었다. 당가의 붉은 봉인이 장부 왼쪽에 놓였다. 젊은 백무결은 잠시 그 도장을 보다가 창천문의 푸른 봉인을 오른쪽에 찍었다. 두 봉인 사이의 빈칸에 마영순이 귀래객잔 수결을 했다. 공제약첩. 독이 퍼졌을 때 누가 문을 열고, 누가 약을 채우고, 누가 길을 지키며, 누가 값을 치르는지가 적혀 있었다. 류단 안에서 두 핵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백무결의 기초 순환은 더는 가시처럼 경맥을 찌르지 않았고, 당소령의 차가운 기운은 호흡에 맞춰 제 길을 찾았다. 완전한 내공도, 미래 고수의 힘도 아니었다. 훈련하면 류단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토대였다. 미래의 백무결이 말했다. —나는 저 장부보다 강한 명령을 만들려고 했다. 미래의 당소령이 답했다. —나는 저 장부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게 두려워 치료법을 숨겼고. —우리가 틀렸군. —전부 틀렸다는 말은 하지 마. 저 애들도 아직 우리만큼 망해 보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탁자에 앉아 있었다. 마영순은 장부를 철제 함에 넣고 열쇠를 목에 걸었다. “착각하지 마. 이 객잔이 너희 문파 지부가 된 건 아니야.” 젊은 백무결이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회의할 때는 방값 받는다.” 젊은 당소령이 물었다. “환자 데려오면요?” “환자는 반값.” “전액 무료가 아니고요?” “공짜로 시작하면 제일 먼저 약값이 끊겨.”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손님들이 떠난 뒤 류단은 밤의 내면 객잔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객방 문이 열려 있었다. 백무결은 자기 방에서 의자를 가져왔고, 당소령은 탁자 표면을 닦은 뒤에야 앉았다. “두 분 다 장기 투숙이십니까?” 류단이 물었다. “돌아갈 몸이 없다.” 백무결이 말했다. “숙박비는 저 사람에게 받아.” 당소령이 그를 가리켰다. “방을 먼저 열었잖아.” “내가 문을 연 게 아니다.” “그럼 설무연 몫으로 달아 놓든가.” 류단은 웃으며 빈 계산대 뒤에 섰다. 마영순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녀는 이곳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바깥 객잔의 규칙은 안쪽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무기를 탁자 위에 올리지 않기.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하기. 깨뜨린 것은 갚기. 그때 세 번째 객방에서 소리가 났다. 똑, 똑똑.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누군가 손가락 마디로 두드리고 있었다. 백무결과 당소령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한 번만 흘러나왔다. —어린 나는 그 구매자 기록을 벌써 세 군데에 팔고 있을 텐데. 류단의 웃음이 멎었다. “누구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문도 더는 울리지 않았다. 아직 열린 객방은 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