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림철폐론자

*상처를 닫는 대장장이*

**저자:** Nitty Gritty Novel Lab

고수들의 결투로 가족과 마을을 잃은 대장장이 진철은 복수가 아니라 무림이라는 제도 자체를 끝내기로 한다. 모든 내공이 영혼의 상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자신도 단전을 열고, 쇠와 기록과 연대로 누구나 힘을 안전하게 내려놓을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 제1화. 고수들이 다녀간 자리

새 도끼 머리가 울었다.

집게를 든 진철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담금질 물에도 넣지 않은 쇳덩이가 모루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망치를 잘못 내리쳤을 때 나는 탁한 울림이 아니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진동이 대장간 바닥을 타고 올라와 쇠를 건드리는 소리였다.

“아버지, 채석장에서 또 바위 깨나 봐요?”

풀무 옆에서 숯을 고르던 아버지가 귀를 기울였다.

“오늘 일 쉬는 날이다. 그리고 화약이면 땅부터 울려. 저건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야.”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처마에 매달아 둔 집게들이 한꺼번에 짤랑거렸다.

진철은 도끼 머리를 다시 화덕에 넣지 않았다. 쇠는 지금이 물에 들일 때였다. 날 끝이 익은 감빛을 지나 앵두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한 호흡만 늦어도 단단함이 달라졌다. 그는 산을 한 번, 물통을 한 번 바라보다 집게를 고쳐 쥐었다.

“또 쇠랑 눈싸움하네.”

문간에서 한연화가 말했다. 햇빛을 등진 채 말아 온 베를 양팔에 안고 있었다. 혼례 이불에 쓸 베라며 반년을 고른 것이었다.

“눈싸움이 아니라 색을 보는 거야.”

“도끼가 네 눈 보고 무서워서 단단해지겠다.”

연화가 베를 작업대 위에 펼쳤다. 씨실이 한 군데 비뚤어진 것을 진철이 찾아 손가락으로 눌렀다.

“여기.”

“그걸 찾을 눈이면 혼례 날 내 댕기 색도 기억해야 할 텐데.”

“붉은색.”

“지난번엔 남색이라더니.”

안채에서 어머니의 웃음이 터졌다. 연화는 못 이기는 척 베 끝으로 진철의 팔을 쳤다. 평소 같으면 그 소리에 진철도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루 위의 쇠붙이가 다시 떨었다. 이번에는 베틀의 북이 천천히 움직일 때처럼 일정한 간격이었다.

쿵. 세 호흡.

쿵. 두 호흡.

간격이 줄고 있었다.

진철은 불에서 도끼 머리를 꺼냈다. 눈부신 쇳덩이를 물통에 담그자 흰 증기가 솟구쳤다. 치이익 하는 소리 아래로 산의 울림이 겹쳤다. 서로 다른 두 진동이 부딪히자 물 표면에 잔물결이 촘촘한 마름모를 만들었다.

“연화야, 밖에 나가지 마.”

“왜?”

마을 위쪽에서 환호가 터졌다. 아이들이 “사람이 날아다닌다!”고 외치며 계곡 쪽으로 달려갔다. 진철의 아버지도 대장간 문턱을 넘었다. 푸른 하늘 한복판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마주 선 거구는 검은 도를 어깨에 걸쳤다. 발밑에는 지붕도, 바위도 없었다.

노인 하나가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화산검성…… 위소현 대협이시다.”

검을 든 사내가 먼저 포권했다. 목소리는 멀리 있었으나 바로 귓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했다.

“남궁 형. 십 년 묵은 물음에 오늘은 답을 내봅시다. 검은 뜻을 앞세우고, 도는 형세를 앞세운다 했으니 어느 쪽이 하늘의 이치에 가까운지.”

남궁태가 호쾌하게 웃었다.

“하늘이 귀가 있다면 오늘 지겹도록 듣겠군.”

두 사람의 말에는 살기가 없었다. 오랜 벗이 바둑 한 판을 앞둔 듯했다. 그 온화함이 진철을 더 불안하게 했다.

검이 뽑혔다.

첫 합은 보이지 않았다. 계곡 양쪽 소나무가 같은 방향으로 누웠고, 뒤늦게 굉음이 터졌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 합에 절벽에서 돌이 쏟아졌다. 남궁태가 그 돌 사이를 가르며 도를 올려 쳤고, 허공에 반달 같은 흰 자국이 남았다.

진철은 싸움을 보지 않았다. 대장간 기둥과 우물물, 처마 아래 집게를 번갈아 살폈다. 계곡은 두 고수의 힘을 받아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망치로 속이 빈 쇠를 치면 특정 자리에서 소리가 커진다. 지금 산 전체가 속 빈 종처럼 울렸다.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진동은 약해지지 않고 쌓였다.

“피해야 해.”

진철은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어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땅도, 공기도, 산도 울리고 있었다.

진철은 계곡을 향해 달렸다. 연화가 뒤에서 그의 허리띠를 낚아챘다.

“미쳤어? 저기로 가서 뭘 하게?”

“멈추라고 해야 해.”

“네 목소리가 닿겠어?”

“쇠를 치면—”

진철은 대장간 앞에 걸린 쟁기날을 집어 모루에 세게 내리쳤다. 쨍, 맑은 소리가 퍼졌다. 다시 쳤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보았지만 하늘의 두 사람은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산을 뒤흔드는 힘이 있었고, 산 아래에서 울리는 쇳소리를 들을 까닭이 없었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세요!”

진철은 세 번째로 쟁기날을 쳤다.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아이를 안은 방앗간댁은 망설였고, 주막 주인은 오히려 웃었다.

“저런 광경을 평생 또 보겠어? 대협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절벽이 소리를 되받고 있어요. 무너질 겁니다.”

“네가 산속을 아느냐, 저분들이 아시겠느냐?”

한 노인은 진철의 말을 듣고 손주 둘을 끌어당겼다. 다른 이들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성이 검을 한 번 펼칠 때마다 허공에 꽃잎 같은 빛이 흩어졌고, 도왕의 도가 그것을 쓸어 갈 때면 웅음이 갈비뼈 안쪽까지 울렸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도망치기 어려웠다.

진철은 마을 종을 치려고 회관으로 뛰었다. 연화가 이번에는 막지 않고 반대편 골목으로 달렸다.

“내가 냇가 쪽 사람들을 내보낼게. 너는 웃마을을 깨워.”

“대장간으로 돌아오지 마.”

“네가 명령할 처지야?”

연화는 쏘아붙이고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잔소리해.”

두 사람은 갈라졌다. 진철이 회관 종을 잡아당겼으나 첫 타종 뒤 줄이 끊어졌다. 산에서 내려온 진동이 종 틀의 못을 벌써 반쯤 뽑아 놓은 탓이었다. 그는 어깨로 종을 밀었다. 쇳덩이가 기울며 둔중한 경고음을 냈다.

그 소리에 몇 집이 문을 열었다. 진철은 아이 셋을 냇길로 떠밀고 다리가 불편한 노인을 업으려 했다. 노인은 자기 소부터 풀어야 한다며 버텼다.

“소는 다시 살 수 있어요.”

“저놈 없으면 겨울에 우리가 죽어!”

진철은 외양간 빗장을 부쉈다. 놀란 소가 골목을 치고 나가자 노인은 욕을 퍼부으면서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때 대장간 쪽에서 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냇길 사람들을 내보낸 연화도 뒷담 골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대장간에 남은 진철의 부모를 데려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진철은 부모를 두고 혼자 내려갈 수 없어 돌아섰고, 연화는 무너진 베틀이 놓인 바깥 작업마당으로 먼저 들어왔다.

위소현의 검 끝에 매화처럼 갈라진 빛이 피었다. 남궁태의 도가 그것을 비스듬히 받아 냈다. 흰 빛 한 줄기가 방향을 잃고 계곡 벽을 훑었다.

절벽이 먼저 갈라졌다.

진철은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파국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겹겹이 쌓이던 진동이 한순간 끊겼다. 달아오른 쇠가 깨지기 직전에도 꼭 그렇게 조용해졌다.

“엎드려!”

그가 연화를 안채 반대편 바깥마당으로 밀었다. 연화가 베틀 곁에 넘어졌다. 진철은 부모에게 손을 뻗었으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감싼 채 안채 문 앞에 있었다. 둘 사이를 화덕이 가로막았다.

세상이 희어졌다.

불이 아니라 압력이 먼저 왔다. 대장간 벽이 종잇장처럼 접혔다. 못이 뽑히고 들보가 날았다. 진철은 담금질 물통 뒤로 처박혔다. 쇠로 두른 물통이 찌그러지며 폭풍을 갈라 냈고, 끓어오른 물이 오른팔과 등을 덮었다.

소리조차 사라진 뒤에야 통증이 찾아왔다.

진철은 진흙 속에서 입을 벌렸다. 숨 대신 재가 들어왔다. 오른팔 살갗이 검붉게 들떠 있었고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땅을 긁어 몸을 빼냈다.

대장간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 구덩이가 있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연화가 쓰러져 있었다. 베를 움켜쥔 왼손이 무너진 베틀 아래 깔려 있었다. 진철은 기어가 들보를 밀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떨어진 쇠막대를 지렛대 삼아 들어 올렸다. 연화가 이를 악물고 손을 뺐다. 약지와 소지가 알아볼 수 없게 으깨져 있었다.

“네 부모님부터.”

연화가 숨을 잘라 말했지만, 진철은 그녀의 손목을 베 조각으로 묶었다. 피가 멎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써야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평생보다 긴 한순간이 걸렸다.

대장간 아래쪽에서는 진철의 종소리를 듣고 피했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방앗간댁은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돌을 날랐고, 소를 풀어 줬던 노인은 피 묻은 삽으로 불씨를 덮었다. 진철은 그들에게 연화를 맡기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채가 있던 자리에서 어머니의 비녀가 나왔다. 끝이 녹아 손바닥에 붙을 만큼 뜨거웠다. 아버지의 가죽 앞치마는 절반만 남아 들보 아래 깔려 있었다. 진철은 들보를 들겠다고 덤볐다가 오른팔이 꺾이며 쓰러졌다.

“산 사람부터 꺼내야 한다!” 누군가 외쳤다.

“여기 계십니다.”

진철은 다시 들보를 붙잡았다. 아무도 부모의 형체가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네 사람이 함께 들보를 옮겼지만 아래에는 검게 탄 뼛조각뿐이었다. 진철은 하나씩 천에 담았다. 어느 것이 아버지이고 어머니인지 묻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냇가 쪽 집들은 종소리 덕에 비어 있었다. 피신했던 아이 셋이 살아 돌아왔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되자 진철은 자기 마음이 부모를 배반한 것 같았고, 위로가 되지 않자 조금 전 아이들을 내보낸 선택까지 거짓이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한 채 재 속을 뒤졌다.

해가 기울 무렵 두 고수가 내려왔다. 옷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남궁태는 구덩이와 시신들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계곡의 반향이 예상보다 컸군.”

그는 허리춤에서 금 주머니를 풀어 돌 위에 놓았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

“집을 다시 짓고도 남을 게다. 남궁의 이름으로 부족하지 않게 치러 주마.”

위소현은 재투성이가 된 진철 앞에 앉았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래서 진철은 잠시 말을 기다렸다.

“유감이네.” 위소현이 낮게 말했다. “오늘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수많은 목숨을 지킬 것이야. 이분들의 죽음도 무도의 진전에 헛되지는 않을 걸세.”

진철은 그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았다. 이미 죄와 형량을 정해 놓은 판결문 같았다. 죽은 이는 증언할 수 없고 산 자는 거부할 수 없는 판결.

“관아에 가면 두 분 이름을 대도 됩니까?”

남궁태의 눈썹이 올라갔다.

“대협들의 비무였다고 기록해도 됩니까?”

위소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진철의 타 버린 팔을 보며 말했다.

“사실을 기록하는 건 막지 않겠네. 다만 분노로 사실을 흐리지는 말게. 우리도 피할 수 없는 반향이었으니.”

진철은 구덩이 둘레에 휘어진 못과 한쪽만 깎여 나간 돌을 가리켰다.

“피할 수 없었다는 건 누가 판단합니까?”

위소현의 시선이 처음으로 진철의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답했다.

“무도에 이른 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알지.”

“그럼 감당하지 못한 건 누구 몫입니까?”

남궁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친 몸으로 말이 길구나. 의원에게 갈 금은 충분히 두었다.”

금이 다시 대답을 대신했다.

“치료가 먼저일세. 원망으로 몸까지 해치지 말게.”

두 사람은 해가 산마루에 닿기 전에 떠났다.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막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연화는 의원에게 실려 갔고, 마을 사람들은 시신을 거두기 시작했다. 진철은 돌 위에 남은 주머니 앞에 홀로 앉았다. 금 한 닢을 꺼내자 저녁빛이 번들거렸다. 어머니가 평생 만져 보지 못한 값이었다. 아버지가 수백 자루의 농기구를 만들어도 모으지 못할 값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버리지 않았다. 왼손으로 입구를 묶어 품에 넣었다. 죄인이 두고 간 물증을 없앨 수는 없었다.

산 위에서는 두 고수가 남긴 검흔과 도흔이 노을을 받아 빛났다. 그 흉터가 시작된 자리부터 끝난 자리까지 눈으로 재었다.

“이걸로 당신들 칼을 녹이겠습니다.”

듣는 사람은 없었다.

## 제2화. 금값과 사람값

연화의 손가락 두 개를 묻은 작은 묘 옆에, 청계촌 사람들은 사망자를 위한 무덤 열네 기를 팠다.

어른 열 명, 아이 셋,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수습하지 못해 이름만 적은 나무패 둘. 죽은 이는 모두 열다섯이었다. 진철의 부모는 같은 관과 한 무덤에 누웠다. 대장간 터에서 건진 뼛조각을 어느 쪽이 누구의 것인지 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철은 오른팔을 목에 매단 채 삽을 들었다. 화상에 붙은 천이 움직일 때마다 살이 뜯겼다. 마을 사람들이 말렸지만 그는 왼손으로 흙을 퍼 올렸다. 관 위에 흙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를 열네 번 듣고 나서야 삽을 놓았다.

연화는 무덤 곁에 앉지 않았다. 왼손에 두툼한 약천을 감고, 오른손으로 쌀독과 사람 수를 세었다.

“오늘 저녁은 서른두 명.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일곱, 젖먹이가 둘. 남은 쌀이 아홉 말이니 죽으로 끓이면 열하루야.”

“오늘은 장례 날이다.” 진철이 말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 따라 굶을 거야?”

연화는 그를 보지 않고 숫자를 다시 적었다. 먹을 갈 힘이 없어 숯 조각으로 헝겊에 썼다. 약지와 소지가 있던 자리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진철은 품속의 금 주머니를 만졌다. 그것을 꺼낼 때마다 남궁태의 목소리가 따라 나왔다. 집을 다시 짓고도 남을 게다.

“저건 쓰지 마.”

“그러면 쌀은?”

“내가 벌어 올게.”

연화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팔 하나로, 열하루 안에, 서른두 명 몫을?”

진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피해자 여덟 명의 손도장을 받은 고소장을 품고 읍성 관아로 갔다. 오른팔의 열은 내리지 않았고 걸을 때마다 등에 난 물집이 옷에 붙었다.

형방 서리는 위소현과 남궁태의 이름을 보자 방문부터 닫았다.

“무림인의 비무는 무림맹 연락소 소관이다.”

“죽은 사람들은 무림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관아가 무림인을 잡아다 세울 수도 없지.”

고소장이 되밀려 왔다. 종이 끝이 진철의 붕대에 걸려 구겨졌다.

무림맹 연락소는 관아 담장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칼을 찬 무사가 문을 지켰고, 안에서는 향내가 났다. 담당자는 진철이 가져온 종이보다 먼저 남궁의 금 주머니를 확인했다.

“배상은 이미 이뤄졌군.”

“누가 합의했습니까?”

“남궁 대협께서 자발적으로 금 이십 냥을 지급하셨다. 화산검성께서도 유감을 표했고. 이 정도면 맹의 관례보다 후한 처사야.”

붓끝이 장부 위를 미끄러졌다. 담당자는 ‘민가 훼손 십일 채, 사망 십오, 배상 충분’이라 적었다.

“사람 열다섯과 집 열한 채가 왜 한 줄입니까?”

“피해를 적는 칸이니까.”

“죽은 아이와 무너진 외양간도 같은 칸에 씁니까?”

담당자가 붓을 내려놓았다.

“젊은이, 네 심정은 안다. 하지만 정도의 두 기둥께서 악의를 품고 그랬겠나? 두 분은 마교가 내려오면 너희 같은 백성을 지킬 분들이다.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작은 흠이 생길 수도 있어.”

진철은 장부를 빼앗고 싶었다. 왼손이 책상 끝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칼집 끝으로 그의 손등을 누르는 문지기의 동작이 더 빨랐다. 힘을 조금만 주었는데도 뼈가 갈리는 듯했다.

“나가라.”

거리로 밀려난 진철은 한참 동안 관아와 연락소 사이에 서 있었다. 양쪽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같은 도랑으로 흘렀다. 서로 다른 문패를 달았을 뿐, 청계촌으로 내려오는 답은 하나였다. 아무도 벌하지 않는다.

그날 밤 진철은 금 주머니를 들고 강가로 갔다. 입구를 풀어 물 위에 기울였다.

“던지면 속이 편해져?”

연화가 뒤에서 물었다. 붕대를 바꾼 왼손을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이걸 쓸 때마다 그자들이 값을 제대로 치렀다고 믿을 거야.”

“그자들 믿음까지 네가 관리해?”

“이건 사람값이야.”

“아니. 금은 금값밖에 없어.”

연화는 그의 손에서 주머니를 빼앗았다. 한 닢을 꺼내 이로 깨물지도, 빛에 비춰 보지도 않았다. 손바닥에 올려 무게만 가늠했다.

“쌀 두 섬. 약재 스무 첩. 겨울까지 쓸 지붕 짚. 금이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야. 죽은 사람 하나도 못 사.”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도 서른두 명이 먹어야 해.”

연화는 숯으로 쓴 헝겊을 펼쳤다. 첫 줄에는 죽은 이들의 이름이, 다음 줄에는 다친 부위가, 그 아래에는 잃은 집과 밭이 따로 적혀 있었다.

“목숨과 물건을 같은 칸에 넣지 않겠어. 받은 금도 누구 몫이라고 나누지 않고 공동으로 쓸 거야. 한 푼 쓸 때마다 어디에 썼는지 남기고.”

“그 돈을 받는 순간 끝난 일이 돼.”

“우리가 버리면 더 빨리 끝나. 화낼 힘이 있으면 쌀부터 사. 내일 약도 받아 와야 해.”

진철은 연화의 붕대 끝에 번진 피를 보았다. 자신은 아직 불탄 대장간 앞에 서 있는데, 연화는 남은 서른두 명의 내일을 셈하고 있었다.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여자가 그보다 먼저 폐허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강에서 거두었다.

공동금 앞에서는 산 사람끼리도 갈렸다. 아들을 잃은 주막 주인은 열다섯 몫으로 나누자 했고, 집을 잃은 이는 그러면 겨울 전에 얼어 죽는다고 맞섰다.

연화는 빈 장부를 폈다.

“누구 슬픔이 더 큰지는 재지 않겠습니다. 지금 안 하면 또 사람이 죽는 일, 쌀과 약과 지붕에만 먼저 씁시다.”

“금이 떨어지면?”

“다 같이 가난해지는 거죠. 누구 아들값을 먼저 썼다는 싸움은 안 남기고.”

열한 사람이 손도장을 찍었다. 반대한 두 사람에게도 쌀과 약은 돌아갔다. 첫 금 한 냥은 쌀, 두 번째는 의원 몫이 됐다. 장부 맨 앞에는 ‘남궁태가 두고 간 금 이십 냥. 합의금이 아니며 청계촌 공동 생존금으로 보관한다’고 적혔다.

그날 밤 연화는 얻어 온 삼베 끝을 베틀에 걸었다. 왼손으로 날실 두 올을 가르려 했으나 남은 세 손가락이 실을 한꺼번에 밀었다. 북이 중간에서 걸렸다. 다시 해도 같았다.

진철이 손을 내밀자 연화가 북으로 손등을 쳤다.

“내 손이 모자란 거지, 네 손이 남는 게 아니야.”

그녀는 한참 발밑의 베틀 다리를 보다가 숯으로 바닥에 선을 그었다. 발로 밟으면 날실이 벌어지는 지렛대, 오른손만 오갈 북. 첫 그림은 비뚤었지만 연화는 지우지 않았다. 발끝으로 그 선을 세 번 밟아 보았다.

“다음 베틀은 손 말고 발이 일하게 만들 거야.”

진철이 숯 선 위에 발을 올리자 연화가 북을 들었다.

“그 발도 네가 빌려줄 셈이야?”

진철은 발을 뺐다.

돈을 쓰기 시작하자 진철도 움직였다. 화상이 덜 아문 팔로 망치를 들 수는 없었지만, 폐허에서 쓸 만한 쇠를 골라냈다. 불에 무른 것, 충격으로 속이 갈라진 것, 다시 달구면 쓸 수 있는 것을 나눴다.

부모의 유골을 찾던 자리에서는 못 세 개가 나왔다. 들보와 함께 녹아 검은 뼛조각에 붙어 있었다. 진철은 그것을 떼어 내지 못하고 한참 앉아 있었다. 결국 작은 정으로 재를 털어 냈다. 못마다 불을 받은 정도가 달랐다. 하나는 머리가 납작해졌고, 하나는 몸통이 휘었으며, 마지막 것은 끝이 녹아 서로 다른 소리를 냈다.

그는 세 개를 천에 싸서 품었다. 무덤에 묻으면 마음은 편할지 몰랐다. 그러나 편안함보다 증거가 필요했다.

진철은 폐허의 낫과 솥, 문고리가 휜 방향을 재고 연화는 장부 여백에 옮겼다. 첫날부터 한 방향이 보였다. 너무 빨리 보여서 틀렸다. 폭발에 날아갔다고 표시한 부엌칼은 주인이 아이의 밧줄을 자르다 놓친 것이었다.

“쇠는 거짓말하지 않아.” 진철이 말했다.

“사람이 쇠 대신 거짓말해 줄 수는 있지. 네가 잘못 읽을 수도 있고.”

두 사람은 생존자 증언을 다시 붙였다. 방앗간댁은 동쪽, 주막 주인은 북쪽이라 했다. 진철이 하나를 골라야 그림이 깔끔해진다고 하자 연화가 숯을 내려놓았다.

“깔끔한 기록이 정확한 기록은 아니야.”

그는 그 문장을 장부 첫 장에 옮겼다. 부엌칼을 빼고, 엇갈린 증언도 남겨 둔 뒤에야 나머지 쇠가 계곡 반대쪽으로 휜 것이 보였다.

진철은 깨진 종을 들고 계곡으로 갔다. 어귀에서 한 번 치자 소리는 짧게 죽었다. 두 고수가 섰던 암벽 사이에서 치자 같은 소리가 두 번 커져 돌아왔고, 세 번째 울림에 종을 맨 끈이 손바닥을 팽팽하게 당겼다.

“저들은 몰랐을까?”

연화의 물음에 진철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위소현과 남궁태 정도의 고수가 자신보다 울림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청계촌을 죽이려고 장소를 골랐다는 흔적도 없었다.

“알 수 있었어.” 그가 말했다. “정확히 몇 채가 무너질지는 몰라도, 기파가 절벽에서 더 크게 되받혀 온다는 건 알았을 거야.”

“그럼 왜 여기서 했지?”

진철은 절벽에 남은 검흔을 올려다보았다.

“자기들 칼과 도가 더 크게 울리니까.”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더 나빴다. 위험을 확인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조사한 내용을 들고 다시 관아로 갔다. 형방 서리는 문전에서 돌려보냈지만, 전에 고소장을 읽었던 젊은 서기 박문수가 밤에 진철을 찾아왔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낮에 말한 적 없는 사람으로 해 주시오.”

서기는 관아 뒤편 문서고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먼지 쌓인 장부 몇 권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겉에는 수해, 산사태, 화재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여백에 작은 글씨로 다른 원인이 붙어 있었다.

‘청람문 장로 비무 뒤 제방 파손.’

‘철혈방 추격전 중 민가 소실.’

‘화산 속가 제자 검기 오발, 사망 칠.’

해마다 있었다. 관아는 원인을 고쳐 썼고 무림맹은 배상 여부만 확인했다. 처벌된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왜 보여 주는 겁니까?” 진철이 물었다.

서기의 입술이 떨렸다.

“삼 년 전 죽은 일곱 중 하나가 내 누이였소. 난 그 뒤로 베껴 두기만 했어. 감히 꺼내지는 못했고.”

그는 얇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십이 년 동안의 사건 마흔세 건이 날짜와 문파, 피해자 수까지 적혀 있었다.

진철은 받지 않았다. 이것을 품는 순간, 단순한 피해자에서 감춰진 기록을 훔친 자가 된다. 관아도 무림맹도 돌아갈 길이 아니었다.

연화가 먼저 책을 받았다.

“원본은 두고 필사본만 가져가요. 들키면 모른다고 하세요.”

“모른다고 해도 필체를 보면 압니다.” 서기가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이후 난 장부에 손대지 못할지도 모르오.”

연화는 자기 장부에서 빈 종이 몇 장을 뜯어 주었다.

“그럼 앞으로는 기억한 날짜만 적어 보내세요. 이름은 우리가 확인할게요. 혼자 모든 걸 들고 있지 마세요.”

서기는 종이를 받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진철이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의 소매에 넣었다. 날짜만 보내면 필체가 드러날 문장도, 훔쳤다고 몰릴 원본도 남지 않았다.

진철은 서기의 촛불을 빌려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에는 아직 먹이 덜 마른 사건 하나가 있었다. 청계촌, 사망 십오. 원인은 낙뢰로 고쳐질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자기 이름 옆에 왼손 엄지를 눌렀다. 인주도 없이 눌러 남은 것은 땀 자국뿐이었다.

“이제부터 한 건도 끝난 일로 두지 않겠습니다.”

새벽에 관아를 나온 두 사람의 품에는 금보다 위험한 장부가 들어 있었다.

## 제3화. 아이를 부수는 문

두 해 동안 진철은 열일곱 문파의 문을 두드렸고, 열일곱 번 문밖으로 밀려났다.

처음에는 대장장이 일로 품삯을 벌며 정식 입문을 청했다. 스무 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다음에는 부러진 병장기를 헐값에 고쳐 주고 수련장을 엿보았다. 기감이 둔하다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에는 숙식만 주면 허드렛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한 문파의 사범은 그의 등에 남은 화상 흉터를 보고 혀를 찼다.

“몸도 이미 상했군. 스무 살 넘은 잡역부에게 약과 쌀을 들일 문파는 없네.”

진철이 보고 싶은 것은 누가, 어떤 절차로 무인을 만드는가였다.

스물한 살이 된 봄, 그는 운문표국 산하의 청우관에 들어갔다. 제자가 아니라 솥과 칼을 고치는 떠돌이 대장장이로서였다. 보름 동안 그는 새벽마다 들리는 호흡을 셌다. 삼류 제자들은 길고 얕게 여섯 번 숨을 들이쉰 뒤 한 번 멈췄다. 삼류 후반의 무사 도창수가 수련장을 지날 때면 그 호흡들이 한꺼번에 흐트러졌다.

도창수는 호탕한 사람이었다. 부러진 칼을 내밀며 선금부터 줬고, 아랫사람이 인사를 하면 이름을 불러 주었다.

“날은 너무 세우지 마. 표물을 지키는 칼은 사람을 베기 전에 겁을 줘야 하거든.”

그는 진철이 고친 칼의 등줄기를 손톱으로 퉁겼다. 맑은 소리가 나자 만족스럽게 웃었다.

“쇠 볼 줄 아는군. 그런데 등에 불벼락이라도 맞았나?”

“대장간이 무너졌습니다.”

“쯧. 세상살이 험하지. 그래도 손에 재주가 남았으니 다행이야.”

말만 들으면 인정 있는 표사였다. 그러나 마을 대장간에 갈 때는 한 번도 품삯을 내지 않았고, 청우관 명목의 보호비를 밀린 집에서는 곡식독을 비웠다. 그가 선심 쓰듯 진철에게 준 선금도 누군가의 겨울 양식에서 나온 돈이었다.

그날 밤 연화에게서 편지가 왔다. 청계촌 생존자들이 자리 잡은 물레골에 발판식 베틀을 세웠다는 소식이었다. 왼손으로 날실을 붙들지 않아도 발로 장력을 바꾸고, 오른손만으로 북을 밀 수 있게 만든 베틀이었다.

혼례 이야기는 편지 첫머리에서 이미 끝난 뒤였다. 두 해 전 연화는 파혼하지 않겠지만 날짜도 잡지 않겠다고 썼다. 진철이 떠도는 동안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남지 않으며, 함께 살 집과 서로 멈출 권한을 다시 정한 뒤에야 혼약을 이어 가겠다는 뜻이었다. 진철은 동의한다는 답을 보냈다. 그 뒤로 둘은 혼례가 아니라 할 일을 적었다.

편지 끝에는 늘 숫자가 붙었다. 공동금 잔액, 새로 제보된 비무 피해, 치료가 필요한 사람 수. 이번에는 낯선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운문표국 산하 입문비로 자식을 보낸 집 셋. 돌아온 아이 없음.’

진철은 편지를 접어 속옷 안에 넣었다.

청우관에 들어오기 전, 그는 세 집을 돌았다. 한 집은 얼굴도 못 본 아이의 면회비를 해마다 냈고, 한 집은 첫째가 잘못됐다고 인정하지 못해 둘째까지 보낼 참이었다. 남은 집에는 문파가 돌려보낸 짚신 한 짝이 있었다.

“재능이 없어 달아났답니다.” 아이의 누나가 말했다. “그런데 얘는 밤길을 무서워해서 뒷간도 혼자 못 갔어요. 산길을 혼자 넘어 달아났다고요?”

진철은 답 대신 짚신 바닥을 살폈다. 진흙이 거의 닳지 않았고 앞코 안쪽에 검붉은 얼룩이 있었다. 도망친 아이의 신발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한 아이에게 다시 신긴 물건처럼 보였다.

진철은 연화에게 답장을 썼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곳을 확인하겠다.’

연화의 두 번째 편지는 짧았다. ‘확인과 구출을 혼동하지 마. 혼자 영웅 흉내 내다 기록까지 잃지 말 것.’

그는 편지를 읽고도 지하실 자물쇠를 열 공구를 따로 챙겼다. 말로는 구조를 알아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지만, 비명이 들리면 뛰어들 속셈도 연화에게는 적지 않았다.

사흘 뒤 청우관에 아이 일곱이 들어왔다. 가장 어린 아이는 앞니도 다 나지 않아 보였다. 부모들은 은전과 곡식을 문 앞에 내려놓고 여러 번 절했다. 사범은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재주가 있으면 운문표국의 사람이 된다. 굶을 걱정도, 산적 걱정도 끝이야.”

그날 저녁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진철은 일부러 수리를 늦춘 칼을 들고 안채로 향했다. 문지기가 길을 막았으나 도창수의 칼이라는 말에 비켜섰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울음이 들렸다. 바닥 아래였다. 뒷벽의 배수구를 지나칠 때 쇠창살 네 개 중 하나만 녹이 없던 것이 떠올랐다. 줄로 갓 간 쇠 냄새도 났다. 누군가 안이 아니라 밖에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지하실 입구에는 새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진철은 등에 멘 공구함에서 가는 끌을 꺼냈다. 쇠판이 맞물리는 소리를 듣고 두 번 밀자 빗장이 풀렸다.

아래에서는 물 냄새와 피 냄새가 났다.

돌방 한가운데 큰 나무통 일곱 개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손발이 묶인 채 물에 잠겨 있었다. 사범들이 일정한 때마다 머리채를 잡아 올려 숨을 한 모금 주고 다시 눌렀다. 벽에는 향이 타고 있었고 북소리가 어둠을 채웠다.

“살고 싶으면 배꼽 아래를 열어라!”

사범이 외쳤다.

한 아이가 물을 토하며 어머니를 찾았다. 다른 아이는 이미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진철의 오른팔 화상 자국이 오래전 끓는 물을 기억해 냈다. 손끝이 먼저 굳었다.

그는 통으로 뛰어들어 가장 가까운 아이의 머리를 끌어 올렸다.

“뭐 하는 놈이냐!”

진철은 밧줄을 끌로 잘랐다. 사범의 몽둥이가 등에 떨어졌다. 눈앞이 하얘졌지만 아이를 통 밖으로 밀어냈다. 두 번째 타격에 무릎이 꺾였다.

문가에서 도창수가 한숨을 쉬었다.

“대장장이, 네 일이나 하지 그랬나.”

“죽습니다.”

“몇은 죽지.”

그는 아주 당연한 셈을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하나가 열리면 그 집안이 십 년은 먹고살아. 부모들도 알고 보낸 거야. 바깥세상이 아이들을 곱게 키워 줄 것 같나?”

“알았다면 돌려보내도 되겠군.”

진철은 아이를 등 뒤로 감쌌다.

“내가 낸 입문비가 얼만지 아나? 청우관에 삼 년을 바치고서야 칼 잡는 법을 배웠다. 너 하나 옳은 사람 되자고 남의 사다리를 걷어차지 마.”

“입문비를 건지자고 아이를 물에 처박습니까?”

“밑에 안 깔린 사람이 어디 있어.”

도창수는 자기 턱 아래의 오래된 흉터를 가리켰다.

“나는 닷새 동안 관 속에 묻혔다.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공기 구멍을 막았지. 같이 들어간 셋 중 나만 나왔어. 그 뒤에야 집에 쌀이 갔다. 네 눈에는 내가 괴물로 보이겠지.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 쌀로 겨울을 넘겼다.”

“당신이 당했으니 이 아이들도 당해야 합니까?”

“내가 안 하면 다른 놈이 해. 적어도 나는 몇 번 더 숨을 쉬게 해 준다.”

물통 옆의 사범 하나가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진철은 도창수의 말이 핑계인 동시에 사실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 잔인한 자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도창수가 자기 몫을 챙긴다는 사실도 함께 참이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없애 주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한 번 더 숨을 주겠습니다.”

진철은 아이를 등 뒤로 더 밀었다.

도창수의 엄지가 칼코등을 밀었다.

첫 일격이 진철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그는 팔로 막았으나 뼈 안쪽까지 충격이 파고들었다. 두 번째는 보지도 못했다. 어깨가 돌벽에 부딪혔다. 숨이 끊기고 입안에 피가 찼다.

진철은 바닥을 짚은 채 소리를 들었다.

도창수는 공격하기 전 오른발 뒤꿈치로 돌바닥을 눌렀다. 짧게 들이쉬고, 칼집이 앞으로 나가는 순간 숨을 토했다. 칼집 속 칼날은 그 호흡을 받아 낮게 웅웅거렸다. 아이가 물속에서 비명을 삼킨 직후 들었던 북소리와 묘하게 닮은 주기였다.

둘, 하나, 멈춤.

둘, 하나, 멈춤.

도창수의 세 번째 일격이 왔다. 진철은 반 박자 먼저 몸을 틀었다. 칼집이 관자놀이 대신 귀를 찢고 지나갔다. 그는 쓰러지며 공구함의 망치를 던졌다. 도창수의 발이 아니라 칼집 끝을 겨냥했다.

쨍.

망치와 칼이 부딪힌 순간, 도창수의 숨이 아주 조금 막혔다. 손목이 흔들렸다. 한 호흡보다 짧은 틈이었다. 진철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도창수의 발이 배를 걷어찼다. 진철은 통 두 개를 넘어뜨리며 날아갔다. 물과 아이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멈춰!”

도창수가 사범들에게 소리쳤다. “아이들부터 건져. 상품을 다 죽일 셈이냐?”

그 말 덕에 아이들은 물 밖으로 나왔다. 진철은 피를 토하면서도 한 아이의 얼굴을 옆으로 돌려 물을 빼냈다.

그때 지하실 위에서 연기가 내려왔다. 종이 타는 매캐함 대신 젖은 쑥 냄새였다. 진철은 복도 밖에 세워져 있던 약초 수레와, 수레꾼 노파가 빈 짐칸을 자꾸 덮던 손을 떠올렸다.

“불이다!”

사범들이 계단을 올려다보는 사이 회색 수염의 사내가 내려왔다. 관복도 무복도 아닌 낡은 검시복 차림이었다. 손에는 쇳가루 묻은 줄이 들려 있었다.

“운문표국 감찰 기록을 받으러 왔네.”

그는 패 하나를 번쩍 보였다. 도창수가 눈을 가늘게 뜨는 찰나, 노인은 걸을 수 있는 아이 셋을 계단으로 올렸다. 위에서 아까의 약초 수레꾼, 오복댁이 하나씩 받아 안채 뒷문으로 이끌었다.

“그 패, 십 년 전에 폐기된 모양인데.” 도창수가 말했다.

“자네 눈이 좋군. 코도 좋았으면 타는 게 장부가 아니라 젖은 쑥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노인이 벽의 횃불을 걷어차 껐다. 지하실이 캄캄해졌다.

“대장장이! 갈아 둔 창살 쪽으로 기어.”

아래에는 아이 셋이 남았다. 진철은 숨이 붙은 한 아이를 업었고, 노인은 둘을 양 겨드랑이에 끼워 끌었다. 어둠 속에서 도창수의 칼이 마침내 뽑혔다. 칼날의 울림이 위치를 알려 주었다. 진철은 그 소리를 피해 벽에 붙었다.

두 사람은 남은 세 아이를 데리고 배수구로 기었다. 마지막 쇠창살은 반쯤 갈린 채 남아 있었다. 노인이 줄을 대자 진철은 망치로 같은 자리를 쳤다. 세 번 만에 창살이 골목 쪽으로 꺾였다.

먼저 나온 진철은 벽에 기대 선 약초 수레를 보았다. 계단으로 보낸 세 아이가 이미 짐칸에 누워 있었다. 오복댁이 젖은 옷을 벗기고 가장 작은 아이에게 자기 겉옷을 입혔다. 진철이 업은 아이와 노인이 끌고 나온 둘까지 실은 뒤, 그는 입술을 짚어 가며 여섯을 셌다. 오복댁이 말고삐를 당기자 수레가 북쪽 골목으로 튀었다. 뒤에서 칼날이 배수구 돌을 긁었다.

“한 명은 못 살렸네. 하진이라고 했어.”

통에서 이미 늘어져 있던 아이였다. 진철은 그 이름을 한 번 입속으로 불렀다. 손을 뻗으려 했지만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나머지는 어디로 갑니까?”

“부모에게 바로 보내면 다시 팔릴 수 있네. 북쪽 농가에서 깨어난 뒤 아이들 뜻부터 물을 걸세. 오복댁이 그래서 빈 수레를 몰고 왔고.”

“당신은 누굽니까?”

“서무한. 예전에는 황실 기물원에서 병장기 값을 매겼고, 나중에는 그것에 죽은 사람 값을 매겼네.”

그는 진철의 옷을 잘라 상처를 살폈다. 등에 남은 화상 흉터를 본 순간 손이 멎었다. 손가락으로 흉터 가장자리를 누르고 호흡을 세더니, 마치 오래된 기록에서 익숙한 글자를 찾은 사람처럼 눈빛이 변했다.

“자네도 단전이 열릴 뻔했군.”

진철은 피 묻은 입술을 닦았다.

“전 무공을 익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닫힌 거야. 계속 벌리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서무한은 죽은 아이가 있는 골목 쪽을 돌아보았다.

“대신 다른 것이 열렸어. 운기할 때마다 병장기에서 나는 어긋난 소리 말일세.”

그날 진철은 구한 아이들과 함께 서무한의 마차에 올라탔다. 도창수가 얼굴을 보았으니 청우관으로 돌아갈 길은 끊겼다. 마차가 골목을 꺾을 때 칼끝이 뒤축을 한 번 긁는 소리가 났지만,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 제4화. 상처는 힘을 기억한다

서무한의 검시소는 버려진 염색방 아래에 있었다.

푸른 물이 말라붙은 큰 독 세 개를 옮기자 바닥에 철문이 나타났다. 문 아래로 내려가자 약재와 석회 냄새가 났다. 벽에는 사람의 뼈보다 병장기가 더 많이 걸려 있었다. 이가 빠진 칼, 가운데가 부러진 창, 안쪽에서부터 터진 철편. 물건마다 죽은 이의 이름과 날짜가 달려 있었다.

진철은 탁자 위에 누운 시신보다 먼저 칼을 보았다. 칼등에 반달 모양의 균열이 연달아 나 있었다.

청우관을 빠져나온 지 열이틀째였다. 첫 나흘 동안 진철은 일어나지도 못했고, 토한 피가 멎은 뒤에야 이곳까지 걸었다. 여섯 아이는 열이 내린 뒤 두 농가로 옮겼다. 셋은 오복댁 곁을, 셋은 서로 곁을 골랐다.

도창수의 추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차 뒤축의 칼자국에는 청우관이 말굽을 표시할 때 쓰는 푸른 송진이 눌어붙어 있었다. 서무한이 북쪽 농가에서야 긁어 낸 흔적이었다. 그사이 도창수의 사람들은 약재상을 돌며 큰 독 세 개를 빌린 자를 찾고 있었다. 은신처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칼자루 밑에는 서로 문 다섯 고리가 찍혀 있었다. 같은 표식이 시신의 이름패 귀퉁이에도 바늘로 새겨져 있었다. 탁자 아래 서랍 하나는 겉보기보다 얕았고, 바닥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얇은 쇳소리가 났다. 서무한은 검시부터 끝내자며 잠긴 서랍을 그대로 두었다.

“칼이 먼저 깨진 게 아닙니다.”

서무한이 소매를 걷어 올리다 멈췄다.

“보지도 않고?”

“균열 안에 피가 없어요. 주인이 쓰러진 뒤 누가 내리쳐 부순 겁니다.”

“무림맹 검시관은 그 반대로 적었지. 병장기가 깨지며 파편이 가슴에 박혔다고.”

서무한은 천을 걷었다. 시신의 아랫배에는 검붉은 반점이 퍼져 있었다. 칼 파편은 가슴에 박혔지만 출혈이 적었다. 이미 숨이 멎은 다음 생긴 상처였다.

“이자는 운기 중 죽었네. 몸 밖 상처는 결과고, 시작은 여기야.”

노인의 손가락이 배꼽 아래를 가리켰다.

진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단전은 몸속 기관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맞아. 배를 열어도 손에 잡히는 주머니가 나오진 않지. 그런데 그 자리가 망가지면 피와 살이 뒤따라 무너져. 없는 것이라 하기엔 남기는 흔적이 너무 일정해.”

서무한은 문파 입문 기록 석 장만 꺼냈다. 물속 질식, 암실 감금, 부모가 죽었다는 거짓 통보. 살아남은 아이들은 배꼽 아래 같은 통증을 호소했고, 직후 호흡법을 배운 아이들에게서 첫 내공이 생겼다.

“마음이 찢긴 자리에 자연기가 스며든다는 말입니까?”

“나는 그렇게 보고 있네.”

“상처 난 사람이 전부 무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문파가 나이와 충격과 호흡을 맞추지. 우연을 절차로 만든 거야.”

서무한은 숯가루를 띄운 물그릇 하나를 시신 곁에 놓고 굳은 손을 운기 자세로 펴자고 했다.

“죽은 사람에게 기가 남습니까?”

“내공은 흩어져도 상처가 끌어당기던 흔적은 잠시 남네.”

진철이 손가락을 펴자 숯가루가 가운데로 모였다. 서무한은 만족했지만 진철은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탁자 다리 아래 쐐기를 뺐다. 기울어진 탁자에서는 시신의 자세와 상관없이 같은 무늬가 생겼다.

“보이는 현상이 있다고 설명까지 맞는 건 아닙니다.” 진철이 말했다. “상처가 아니라 몸 안에 남은 열이 공기를 움직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 그래서 가설이라고 부르는 걸세.”

서무한은 자기 기록의 ‘성공’ 옆에 붉은 줄을 그었다. 그러고 새 쐐기를 박아 탁자를 바로 세웠다. 이번에는 배 아래를 펴고 운기 자세를 잡았을 때만 숯가루가 느리게 모였다.

“남의 확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아. 자기한테 필요한 답까지 의심하는 자는 드물지. 계속 그렇게 하게.”

“그럼 재능을 본다는 말은 거짓이군요.”

“절반만. 잘 찢어지고, 찢어진 채 살아남는 아이를 고르는 거야.”

돌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공구함을 잡았다. 문이 열리고 연화가 내려왔다. 두 손가락을 잃은 왼손으로도 책 꾸러미를 묶은 매듭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람을 불러 놓고 독 밑에 숨으면 어떻게 찾아요?”

서무한이 머쓱하게 기침했다. “내가 주소를 자세히 쓰면 잡으러 오는 자도 잘 찾거든.”

연화는 진철의 터진 입술과 옆구리 붕대부터 보았다. 다가와 상처를 만지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여섯은 북쪽 농가에 숨겼어. 하진은 입관했고.”

연화는 장부에 ‘칠 중 육 생존. 하진 사망’이라고 적었다. 살아남은 수를 쓸 때도 죽은 이름을 빼지 않았다.

허리에 찬 것은 물레골 공동 장부의 현장본이었다. 원본은 수차집 쇠궤에 두고 세 집이 열쇠를 나눠 가졌으며, 피해자 이름과 금전 출납은 달마다 두 벌씩 필사했다. 연화가 가져온 책 꾸러미에는 각 마을에서 온 사본과 편지가 들었다. 불이나 칼 하나로 이름 전체가 사라지지 않게 만든 방식이었다.

서무한의 설명을 들은 뒤 그녀가 처음 한 질문은 달랐다.

“상처라면 닫을 수 있나요?”

“영혼은 본디 아물려 하네. 수련이란 매일 같은 곳을 벌려 놓는 일에 가깝지.”

“그러면 호흡을 그만두면 되겠네요.”

“갓 열린 단전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기가 많이 쌓인 뒤에는 상처가 닫히는 길을 안에서 막아. 억지로 봉하면 갇힌 기가 경맥과 장부로 거슬러 올라가 사람을 죽이지.”

연화의 눈이 시신으로 갔다. “이 사람처럼.”

서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철은 칼의 균열을 다시 살폈다. 칼 안쪽에 기름과 다른 옅은 가루가 끼어 있었다. 그는 손톱으로 긁어 냄새를 맡았다.

“진정시키는 약재가 묻었습니다. 누가 이 사람의 운기를 멈추게 했습니까?”

서무한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나였네.”

검시소의 등잔 불꽃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노인은 시신의 이름표를 바로 놓았다.

“문파를 떠나고 싶다기에 호흡을 끊고 단전을 아물게 하려 했어. 쌓인 기를 먼저 빼야 한다는 데까지는 알았지. 침으로 경맥을 열고 병장기에 기를 흘려보냈네. 절반쯤 비웠다고 생각했을 때 상처를 진정시키는 약을 썼고.”

“절반이 아니었군요.”

“내가 잰 건 칼로 나온 힘뿐이었어. 뼈와 장부에 밴 기를 세지 못했지.”

연화가 물었다. “몇 명째에 멈췄나요?”

“처음이자 마지막.”

“그전에는 왜 연구했고요?”

서무한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아들이 열한 살 때 문파에 들어갔네. 사흘 뒤 시신으로 왔지. 재능이 부족해 의식을 견디지 못했다고 했어. 나는 황실 녹을 먹던 몸이라 소란을 만들지 않았네. 대신 남의 시신을 열어 이유를 찾았지. 아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살아 있을 때 묻지 못한 비겁함을 죽은 이들로 덮은 셈이야.”

진철은 노인을 위로하지 않았다. 실패를 고백했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다만 서무한의 기록 한쪽에 성공이라 표시된 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기 확신에 맞지 않는 결과도 지우지 않은 기록이었다.

“단전을 닫는 법을 찾으면 무림을 끝낼 수 있습니다.”

진철의 말에 연화가 즉시 돌아섰다.

“누구의 단전을?”

“내려놓고 싶은 사람부터.”

“그다음은?”

“남의 목숨 위에 선 자들.”

“본인이 싫다는데도?”

진철은 답을 고르는 대신 도창수의 칼집이 아이들 머리 위로 움직이던 순간을 떠올렸다.

“도창수가 내일 또 아이를 사 가도 허락부터 받아야 해?”

연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자의 단전을 닫으면 표국에 붙들린 가족은 누가 먹여 살려? 힘을 빼앗으면 그 사람 밥벌이와 가족까지 같이 무너져. 네가 싫어한 자들이 사람값을 집값과 한 칸에 썼던 걸 잊지 마.”

말다툼은 문 위에서 난 금속음에 끊겼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염색방 출입문 빗장이 잘려 나가는 소리였다.

서무한이 등잔을 껐다. “도창수일세.”

“어떻게 알죠?”

“저 칼끝이 마차에 송진을 묻혔네. 염색방 거리까지 좁힌 뒤 독을 하나씩 뒤졌겠지. 세 번에 빗장을 잘라 기록을 상하지 않게 여는 건 청우관에서도 하던 방식이고.”

위에서 도창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 영감, 아이 여섯이면 큰돈이야. 기록만 내놓으면 대장장이는 팔다리 붙여 보내 주지.”

검시소를 훑었다. 사람이 서서 드나들 출구는 철문 하나뿐이었다. 벽 아래에는 시신 운반구가 드나들던 낮은 통로가 있었으나 한 사람이 겨우 기어갈 폭이었고, 녹슨 덮개 너머는 골목 배수구로 이어졌다. 벽 한쪽에는 작은 풀무와 화로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도르래와 굵은 삼베끈이 매여 있었다. 연화는 끈을 한 번 당겨 보고 장력을 가늠했다.

“이걸 저 기둥에 두 번 감아요.”

“무슨 생각이야?”

“베틀에서 날실 하나를 끊으면 힘이 어디로 튀는지 보여 줄게.”

진철은 화로에 숯을 쏟았다. 서무한이 풀무를 밟자 불이 살아났다. 그는 벽에 걸린 부러진 창과 칼을 화로 가장자리에 세웠다. 달굴 시간은 없었다. 대신 서로 길이가 다른 쇠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었다.

도창수가 철문을 열고 내려왔다. 뒤에는 청우관 무사 넷이 따랐다.

“셋이서 무덤을 파고 놀았군.”

그가 계단 마지막 칸을 밟는 순간 진철이 망치로 가장 긴 창대를 쳤다. 귀를 찌르는 울림이 좁은 방을 돌았다. 이어 짧은 칼, 금 간 솥, 철판을 차례로 두드렸다. 도창수의 부하들이 귀를 막았다.

도창수는 달랐다. 배 아래에 힘을 모아 소리를 버티고 곧장 달려들었다. 진철은 그 호흡을 기억했다. 둘, 하나, 멈춤. 그러나 피하는 몸은 아직 평범했다. 칼집이 어깨를 스치며 살을 찢었다.

“지금!” 연화가 외쳤다.

서무한이 도르래의 쐐기를 뽑았다. 팽팽히 당겨 둔 삼베끈이 풀리며 선반을 후려쳤다. 병장기 수십 자루가 한꺼번에 바닥으로 쏟아졌다. 도창수의 발이 쇠 사이에 갇혔다.

진철은 화로 위 석회 자루를 망치로 갈랐다. 뜨거운 공기를 만난 가루가 흰 구름처럼 번졌다. 셋은 시신 운반용 좁은 통로 입구로 물러났다.

뒤에서 도창수가 칼을 휘둘렀다. 날에 실린 내공이 화로를 갈랐다. 숯불이 기록 선반으로 튀었다.

불빛이 탁자 아래를 핥자 얕은 서랍의 이중 바닥이 들떴다. 다섯 고리 문양이 찍힌 금속판 끝이 드러났다. 진철은 정으로 바닥을 젖혀 금속판을 빼냈다. 바로 옆에는 서무한의 가설을 정리한 두꺼운 연구첩이 있었다. 한 손에 둘 다 들 수는 없었다. 그는 앞에서 연화가 이름표 묶음을 옷 안에 넣는 것을 확인하고, 검증하지 못한 연구첩을 불 속에 남겼다.

통로는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갈 폭이었다. 연화는 들어가기 전 허리의 현장 장부부터 속옷 안에 묶었다. 앞에서 오른손으로 몸을 끌었고, 진철은 뒤에서 그녀의 발이 걸리지 않게 치맛자락을 걷었다. 서무한은 공동 장부와 별개인 검시 기록 꾸러미를 놓지 못해 어깨가 벽에 끼었다.

“버려요!” 연화가 외쳤다.

“아이들 명단이네.”

진철은 꾸러미의 매듭을 끊었다. 종이를 몇 장씩 말아 세 사람의 옷 안에 나눠 넣었다. 서무한은 남은 계산표를 버리고, 죽은 이들의 이름과 실패 경과가 적힌 뒤쪽을 챙겼다. 불길이 통로 입구까지 번지는 동안 내린 선택이었다.

서무한이 돌아가려 하자 진철이 팔을 붙들었다.

“가면 죽습니다.”

“이십 년 기록이야!”

“당신이 죽으면 실패만 남습니다.”

서무한은 이를 갈며 통로로 들어왔다. 세 사람이 골목의 배수구로 빠져나왔을 때 염색방 바닥 사이로 불길이 솟았다.

비가 내리는 새벽, 셋은 추적을 피해 버려진 옹기 가마에 숨었다. 종이는 군데군데 그슬렸지만 이름은 남았다. 연화가 현장 장부를 펼쳐 마른 것을 확인한 뒤, 진철이 불 속에서 가져온 손바닥만 한 금속판을 닦았다. 앞면에는 아무 글자도 없고, 뒷면에는 서로 물고 있는 다섯 고리가 새겨져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작은 글씨가 드러났다.

‘흑풍산 망념서고.’

서무한의 손이 떨렸다. 시신의 칼과 이름패에 있던 표식이 이제야 뜻을 얻었다.

“그자가 끝까지 숨긴 물건이네. 무공을 버리려던 자들이 찾았다는 서고.”

옹기장이 노파는 그들을 열흘 숨겨 주었다. 서무한은 진철의 찢어진 어깨를 꿰맸고, 연화는 아이 여섯의 거처를 알리고 검시 기록 사본을 두 방향으로 보냈다. 열하루째 새벽, 진철이 팔을 어깨높이까지 들자 세 사람은 짐을 쌌다.

진철은 차가워진 금속 봉인을 받았다. 돌아갈 집도, 보존할 검시소도 타 버렸지만 봉인이 가리키는 곳은 남아 있었다.

“흑풍산으로 갑시다. 저들이 우리 흔적을 다시 잇기 전에.”

## 제5화. 힘을 버린 자들의 서고

산등성이의 검은 억새가 바람에 누우면 흑풍산 전체가 먹물을 엎지른 듯 보였다.

진철 일행은 사흘 동안 능선을 올랐다. 도창수에게 맞은 옆구리가 걸음마다 욱신거렸고, 오른팔 화상은 찬바람을 받을 때마다 굳었다. 서무한은 길을 잃을 때마다 금속 봉인을 바위 가까이 댔다. 봉인의 다섯 고리 중 하나가 미세하게 떨리는 방향을 따라갔다.

연화가 먼저 이상한 점을 찾았다.

“바람은 왼쪽에서 오는데 억새는 오른쪽으로 눕네요.”

검은 억새 사이에 좁은 틈이 있었다. 바람이 산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세 사람은 덩굴을 걷어 내고 절벽에 박힌 철문을 발견했다.

문에는 열쇠 구멍 대신 둥근 쇠판 다섯 개가 겹쳐 있었다. 각각 청동, 무쇠, 은, 주석, 이름 모를 검붉은 쇠였다. 금속판 아래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가장 강한 쇠를 먼저 두는 자는 힘을 얻고, 가장 약한 쇠를 먼저 두는 자는 길을 얻는다.’

서무한이 은판을 만지려 하자 진철이 막았다. 쇠판은 문 옆의 다섯 홈에 차례로 밀어 넣는 빗장이었다. 가장 깊은 첫째 홈에는 주석 가루가 남아 있었고 바깥쪽 홈일수록 단단한 판이 긁고 간 자국이 짙었다.

“강하고 약한 순서가 아닙니다.”

“그럼?”

진철은 판을 모두 빼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퉁겼다. 주석판을 첫째 홈, 곧 가장 안쪽에 넣었다. 은과 청동, 검붉은 쇠를 차례로 밀고 마지막 바깥 홈에 무쇠판을 세웠다.

“비문의 ‘먼저’는 판을 끼우는 순서입니다. 바깥 무쇠가 충격을 넓게 받고, 안쪽의 무른 주석이 남은 충격을 찌그러지며 먹습니다. 예전에 연 사람도 같은 순서로 긁어 놓았어요.”

다섯 판의 울림이 하나로 겹치자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망념서고에는 책 냄새가 없었다. 벽과 바닥이 모두 얇은 금속판으로 덮여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멀리서 되돌아왔다. 먼지는 쌓였는데 거미줄 하나 없었다.

첫 방 문턱에는 ‘집착을 되울리는 공명실’이라는 글자가 닳아 있었다. 벽에는 수백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 아래에는 문파와 경지, 마지막 소망이 짧게 적혔다.

‘백운문 유자경, 이류 후반. 딸 앞에서 칼을 놓고 싶다.’

‘혈도방 장문악, 일류 초입. 내 손으로 죽인 이들의 얼굴을 더는 꿈꾸지 않기를.’

‘소림 속가 정해, 삼류 중반. 밭으로 돌아가고 싶다.’

대부분의 이름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옆 칸에는 사망 사유가 붙었다. 배신으로 처형, 비급 유출 혐의, 주화입마로 위장. 힘을 얻으려다 죽은 이가 아니라 힘을 버리려다 죽은 이들의 명부였다.

연화는 이름을 하나씩 장부에 옮겼다.

“다 적을 셈이야?” 진철이 물었다.

“이름이 지워져서 죽은 사람들이잖아.”

연화가 마지막 이름을 베끼자 철필 끝이 이름판 아래의 가는 홈을 건드렸다. 그 말 뒤로 방 안에서 베틀 북 소리가 났다.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서고 안에는 베틀이 없었다. 그러나 북이 날실 사이를 오가는 소리, 발판이 삐걱이는 소리, 어머니가 틀린 매듭을 꾸짖는 목소리까지 또렷했다. 금속 벽 속의 연화는 손가락 다섯 개로 날실을 갈랐다. 연화는 저도 모르게 왼손을 뻗어 그 손에 겹쳤다.

북이 매끄럽게 지나갔다. 너무 매끄러웠다. 어머니라면 그 속도로 짜면 베가 운다고 등짝부터 때렸을 터였다. 연화는 이를 악물고 환영의 북을 잡아 꺾었다. 손안에서 부러진 것은 빛뿐이었지만, 그제야 자기 옆을 지나 대장간 쪽으로 걷는 진철이 보였다.

진철에게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아버지가 모루의 중심을 비켜 치는 버릇. 어머니가 저녁상을 놓으며 혼례 날짜를 묻는 목소리. 문을 열면 참사 전 오후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완벽했다.

금속 벽이 떨리며 대장간 모습을 비췄다. 아버지는 풀무 옆에 있었고 어머니는 웃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 진철의 손에는 달아오른 도끼 머리가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울림을 더 빨리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뛰어가면 부모를 끌어낼 수 있었다. 연화를 밖으로 보내고, 물통 뒤에 네 사람이 몸을 숨기면 될지도 몰랐다.

진철이 한 걸음 내디뎠다.

“아들, 물에 넣어라. 쇠 식겠다.”

아버지가 말했다.

진철은 도끼 머리를 물통에 넣지 못했다. 그날의 쇠가 어떻게 울었는지, 물결이 어떤 무늬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 번만 더 보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손바닥이 뺨을 때렸다.

뺨을 때린 건 연화였다. 오른손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죽은 사람 말고 산 사람 말을 들어.”

진철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화의 왼손은 다섯 손가락이 온전해 보였다가, 금속 벽의 빛이 흔들리자 다시 셋으로 돌아왔다.

“다시 할 수 있었어.”

“아니. 다시 보는 것뿐이야.”

“이번에는 구할 수도—”

“그럼 가.”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네가 만든 기억 속에서 평생 잘 살아. 나는 손가락 셋으로 밖에 나가서 오늘 사람들 밥을 셀 테니까.”

환영 속 대장간에서 굉음이 다가왔다. 진철은 부모에게 등을 돌렸다. 금속 벽 앞의 받침쇠에는 앞선 방문자들이 내리친 망치 자국과, 한 번 부러지면 돌아오지 않을 걸쇠가 있었다. 그들이 다시 죽는 소리를 들으면서 받침쇠를 망치로 내리쳤다. 걸쇠가 부러지고 공명실의 울림이 깨졌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늘어지다 사라지고, 대장간은 차가운 벽으로 돌아왔다. 뒤에서 철문이 내려앉아 들어온 길을 막았다.

연화는 이미 베틀 소리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서무한은 방구석에 무릎을 꿇고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진철과 연화가 양쪽 팔을 잡아 일으킨 뒤에야 노인은 눈을 떴다.

“통과한 대가로 퇴로를 닫았군.” 서무한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받침쇠의 망치 자국을 남긴 사람들도 같은 값을 냈겠지요.”

실제로 다음 문은 열려 있었다.

안쪽 서고 중앙에는 얇은 철엽을 실로 엮은 책 한 권만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네 글자가 깊게 파여 있었다.

해리심경.

진철은 제목부터 의심했다. 더 강한 힘을 주는 비급이라면 이곳 이름들과 맞지 않았다. 첫 철엽에는 저자의 경고가 적혀 있었다.

‘힘을 풀려는 자여, 힘을 모르는 채 손대지 말라. 닫힌 눈은 결을 볼 수 없고, 느린 몸은 결에 닿지 못하며, 빈 손은 결을 움직이지 못한다.’

첫 장에는 지금 익힐 세 갈래만 자세했다. 기의 큰 흐름을 느끼는 심안, 자연기를 중성으로 거르는 해기, 충돌에서 반 발 비키는 이형신법의 첫 보법 유영보. 감지 단계의 해기는 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뒤 철엽에는 분석, 간섭, 종합, 해체라는 제목만 닫혀 있었다. 남의 운기에 닿는 간섭은 일류 이후, 단전을 안전하게 푸는 해체는 환골탈태 이후였다. 지금의 진철은 도창수보다 느렸고, 누구의 힘도 빼앗을 수 없었다.

“왜 웃어?” 연화가 물었다.

진철은 그제야 입꼬리가 움직인 것을 알았다.

“적어도 오늘 당장 고수가 된다고 속이지는 않아서.”

“이건 폐공법이 아니라 폐공까지 가는 길이군요.” 진철이 말했다.

“못 갈 수도 있는 길이지.” 서무한이 철엽을 덮었다.

진철은 수련 첫 장을 읽었다. 감지의 시작은 닫힌 영혼에 작은 상처를 내는 일이었다. 평범한 입문법처럼 공포로 찢는 방식과 달리, 이미 생겼던 상처의 결을 찾아 의식적으로 벌렸다. 그 틈으로 들어온 자연기를 호흡으로 걸러 해기로 바꾸어야 했다.

그의 상처는 청계촌에서 열리다 아물었다. 책에는 그런 흔적을 가진 사람이 드물며, 다시 여는 과정에서 그날의 고통이 돌아올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연화가 책을 덮었다.

“하지 않아도 돼.”

“해야 해.”

“방금 전까지 아이들을 찢어 무인으로 만드는 걸 욕했잖아.”

“남이 찢는 것과 내가 고르는 건 달라.”

“상처는 네 선택을 알아보지 못해.”

진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등을 타고 참사 때의 열이 올라왔다. 호흡을 끊고 책을 덮고 싶은 몸과, 그 책을 놓치고 싶지 않은 손이 서로 버텼다.

그는 철엽을 다시 펼쳤다.

“그래서 당신이 기록해 줘. 내가 왜 시작했는지, 어디서 틀렸는지. 틀리면 멈추게 해.”

연화는 선뜻 승낙하지 않았다.

“멈추라면 멈출 거야?”

“이유를 듣겠어.”

“여전히 네가 마지막 판정을 하겠다는 말이네.”

“지금은 그것밖에 약속 못 해.”

연화는 오래 그를 노려보다 장부의 빈 장을 펼쳤다.

“수련을 허락하는 게 아니야. 내가 못 막으니 조건을 거는 거야. 원본 철엽은 내가 보관하고, 넌 첫 장만 베껴. 공명구는 수련할 때 말고는 서 선생이 맡아요. 사람을 상대로 쓰려면 우리 둘과 피해 당사자 과반이 먼저 동의해야 해.”

“어기면?”

“공동금, 숙소, 소식망을 끊고 책을 회수해. 그래도 하겠다면 혼자 하게 될 거야.”

서무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철은 해리심경 원본을 연화 쪽으로 밀었다.

“그 조건으로 시작할게.”

진철은 첫 수련 자리에 앉았다. 서무한은 길만 짚어 주고 물러났다. 이 무공을 전수할 사람은 책밖에 없었다.

호흡을 억지로 깊게 하지 않았다. 참사 직전 모루에 전해진 진동을 떠올리고, 그보다 더 안쪽의 울림을 찾았다. 등에 난 화상이 뜨거워졌다. 배꼽 아래에서 바늘 끝 같은 통증이 일었다.

문을 열면 부모가 죽는 오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철은 피하지 않았다. 굉음과 끓는 물, 살 타는 냄새가 순서대로 돌아왔다. 그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호흡만 셌다. 셋에 들이쉬고, 둘에 머물고, 다섯에 내쉬었다.

아물어 붙었던 상처가 아주 조금 벌어졌다.

산속의 찬 기운이 그 틈으로 밀려들었다. 욕심내어 잡으려 하자 통증이 커졌다. 들숨 끝을 줄이고 날숨을 길게 빼자 뜨겁고 차가운 기운은 흩어지고, 어느 쪽 성질도 띠지 않은 머리카락만 한 한 줄이 배 아래에 남았다.

해기였다.

그것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러나 진철의 온몸은 땀에 젖었다. 그는 무릎을 짚고 토했다.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벽 너머 고수의 기운이 보이는 일도 없었다. 겨우 금속 봉인의 떨림이 손바닥과 배 아래에서 동시에 느껴졌을 뿐이다.

“아직 삼류 초입에도 못 미쳐.” 서무한이 맥을 짚으며 말했다. “세 호흡 뒤 맥이 끊기네.”

연화는 장부에 그대로 적었다. ‘해기 한 줄. 세 호흡 유지. 구토 한 차례.’

서무한이 내준 때에만 진철은 부모의 유골에서 건진 못 세 개를 꺼냈다. 서고 한쪽의 작은 화로를 살리고, 서로 다른 소리를 죽이지 않도록 고리 하나에 엮었다. 무기가 아니었다. 해기를 몸 안에 돌릴 때 어떤 못의 떨림을 먼저 감지하는지 확인할 수련구였다.

첫 공명구가 완성될 무렵, 산 아래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연화가 다리에 묶인 쪽지를 펼쳤다. 물레골 소식망이 보낸 것이었다.

‘도창수, 보호비 두 배 요구. 사흘 뒤 곡식과 아이 하나를 데려가겠다 함.’

연화의 얼굴이 굳었다.

진철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유영보 첫 자세를 잡았다. 한 걸음에 옆구리가 쑤셨고 해기는 금세 흩어졌다.

“사흘이면 내려갈 수 있어.”

“수련할 시간은?” 서무한이 물었다.

“가는 동안 숨을 쉽니다.”

세 사람은 해가 뜨기 전에 망념서고를 나섰다. 원본은 연화의 짐에, 공명구는 서무한의 약갑에 따로 들어갔다. 진철은 베껴 쓴 첫 장을 품고 유영보의 첫 반 걸음을 디뎠다. 검은 억새가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짐을 스치며 한 방향으로 누웠다.

## 제6화. 첫 번째 균열

물레골 입구에는 부러진 베틀 다리가 말뚝처럼 박혀 있었다.

그 위에 운문표국의 푸른 깃발이 걸렸다. 보호비를 내는 마을이라는 표시였다. 깃발 아래에는 곡식 자루 열두 개와 열두 살짜리 사내아이 강호가 앉아 있었다.

연화가 아이 곁으로 달려갔다.

“누가 너를 여기 앉혔어?”

“어머니가요.”

강호는 울지 않았다. 운문표국에 들어가면 밥을 먹을 수 있고 무공도 배운다는 말을 외운 듯 되풀이했다. 손목 안쪽에는 어머니가 놓치지 않으려다 남긴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진철은 깃발을 뽑으려 했다. 연화가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지금 뽑으면 오늘 싸움이야. 준비부터 해.”

“아이는 오늘 데려간대.”

“그래서 네가 또 먼저 맞아 쓰러지면 누가 막는데?”

진철은 손을 놓았다. 흑풍산에서 내려오는 사흘 동안 해기를 열 호흡까지 늘려 겨우 삼류 초입에 들었지만, 도창수와 맞설 만큼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찢어진 어깨에는 딱지가 앉았어도 옆구리를 크게 틀 수 없었다. 유영보 첫걸음도 오래 밴 대장장이의 넓은 자세로 자꾸 돌아왔다.

도창수는 해 질 무렵 왔다. 부하 둘을 데려왔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온 것은 혼자였다. 그는 진철을 보자 칼자루를 엄지로 밀었다.

“역시 서 영감과 붙어 있었군.”

“아이를 두고 가.”

“보호비가 모자라면 사람으로 받는다는 약조가 있어.”

연화가 장부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누가 한 약조죠?”

“이전 촌장.”

“그 사람은 청계촌에서 죽었어요. 죽은 사람 도장으로 산 아이를 가져가겠다고요?”

도창수의 시선이 장부에 멎었다. 그는 억지로 웃지 않았다.

“나도 이 짓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이번 달 상납을 못 채우면 내 누이와 조카가 표국 안채에서 쫓겨난다. 쫓겨나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고. 내 입문비 빚이 아직 남았거든.”

“그 빚을 왜 이 마을이 갚아야 하지?” 진철이 물었다.

“그럼 누가 갚나? 세상 빚은 아래로 흐르는 거야. 나도 위에서 눌린다.”

도창수는 자기 배를 두드렸다.

“네가 문파 밑을 좀 기웃거렸으니 알겠지. 무공 한 자락 공짜로 얻는 줄 아나? 나는 열세 살부터 맞고 굶어서 이 단전을 열었어. 지금 물러나면 그 세월과 가족이 한꺼번에 날아가.”

말을 마친 도창수는 표국 깃발의 매듭을 두 번 조였다. 손이 멎은 것은 누이와 조카를 말할 때뿐이었다.

연화가 말했다. “이틀만 줘요. 당신이 실제로 얼마를 올리고, 운문표국이 얼마를 받는지 대조해 줄 테니.”

“그걸 알아서?”

“마을이 낼 돈과 당신이 빼돌린 돈을 나눠 보려고요.”

도창수의 눈이 서늘해졌다. “손가락 둘을 잃고도 셈은 잘하는군.”

“그래서 더 잘해요. 남은 걸 틀릴 여유가 없으니까.”

도창수의 시선은 대답하는 동안에도 장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틀을 주고 물레골 객사에 방을 잡았다. 장부를 든 사람이 오가는 길을 보려는 듯 창가에 부하를 세웠다. 진철이 멀찍이 따라붙는 것도 알았으나, 삼류 초입에도 갓 든 몸을 향해 코웃음만 쳤다.

이틀 동안 진철은 도창수의 뒤가 아니라 흔적을 좇았다. 우물물은 그가 숨을 멈출 때 안으로 모였고, 거절을 들은 뒤에는 늘 왼손이 칼집을 누르고 오른발이 먼저 나갔다. 삼류 후반의 몸은 빨랐다. 그래서 진철은 따라갈 생각을 버리고 우물과 베틀방 사이, 칼을 크게 휘두를 수 없는 길에 반 발을 표시했다. 밤새 뒤꿈치만 돌렸다. 스무 번에 한 번 옆구리가 버텼다.

연화는 공동 장부와 영수증을 마당 벽에 붙였다. 물레골이 두 해 동안 낸 곡식은 일흔여덟 섬, 표국 수령분은 마흔한 섬. 차이 중 열두 섬은 도창수의 입문비 이자였고 나머지는 청우관과 중간 표사에게 갔다.

사본은 세 갈래로 보냈다. 아홉 피해 마을에서는 여섯 아이의 진술을 함께 공개하겠다는 표찰이 왔다. 박문수에게 보낸 대조표에는 답이 없었다. 관아 문 앞까지 간 심부름꾼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청하표국도 관아 접수인이 찍혀야 상단 세 곳과 움직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셋 다 믿었으면 지금 우린 답 두 개를 기다리다 아이 하나를 보냈겠네.” 연화가 말했다.

그래도 한 갈래는 살아 있었고, 벽의 숫자는 이미 주민들 눈앞에 있었다. 도창수에게 쌀을 빼앗긴 이와 그의 부하에게 산적을 쫓아 달라 했던 이가 같은 장부 앞에 섰다.

“오늘부터 한 집씩 내지 않습니다. 저들이 칼을 들면?” 연화가 둘러보았다. “혼자 맞지 말아야죠.”

망치와 베틀 북이 있는 집은 열일곱이었다. 같은 수의 집이 공명구의 쓰임과 중단 시점을 듣고 손도장을 찍었다. 서무한은 그제야 약갑을 열었다. 소리는 도창수의 호흡을 흐리고, 공명구는 진철이 때를 찾는 데만 쓰기로 했다.

약속한 이틀째 해 질 무렵, 도창수가 부하 여섯을 데리고 왔다. 벽의 장부를 본 순간 그의 턱이 굳었다.

“떼어 내.”

부하 하나가 다가가자 주민들이 길을 막았다. 손에는 낫과 괭이가 있었지만 먼저 들지는 않았다.

연화가 장부의 사본을 높이 들었다.

“피해 마을 아홉 곳, 관아 박문수 서기, 청하표국 계약방에 보냈어요. 답이 없어도 종이는 들어갔고, 아홉 마을은 이미 아이들 진술을 받았어요. 여기 걸린 걸 찢으면 그 사실부터 퍼집니다.”

부하들 사이에서 박석이 벽으로 다가갔다. 자기 아버지 박노식의 이름 아래 ‘장례비 은 세 냥, 원금 상환 뒤 이자 일곱 냥’이라고 적힌 줄을 두 번 읽었다.

“아버지 장례에 표국이 은 한 냥만 냈습니다. 나머지는 어디서 생긴 빚입니까?”

다른 부하 유갑도 누이 유월의 이름을 찾았다. 약값 두 냥이 입문 보증금 아홉 냥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창수가 장부를 떼라고 명령하자 유갑은 칼 쥔 손을 내렸다.

“누이 빚부터 설명해 주십시오. 이 종이는 못 뗍니다.”

도창수가 이를 드러냈다. “벽에서 내려. 둘의 입문 빚은 내가 없애 주지.”

박석은 아버지 이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없던 빚을 없애 주신다고요?”

박석도 길에서 비켰다. 나머지 넷은 둘과 주민 사이를 번갈아 볼 뿐 칼을 뽑지 않았다.

도창수는 진철을 향해 칼집을 겨눴다.

“네가 사람들 뒤에 숨는 법부터 배웠군.”

“오늘은 나 혼자 맞지 않아.”

도창수가 땅을 박찼다.

그 순간 마을 곳곳에서 망치가 울렸다.

쾅, 쾅. 베틀 북이 벽을 쳤다. 일정한 듯하다가 한 박자씩 비껴가는 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도창수의 첫 숨이 소음에 묻혔다.

진철은 소리를 좇지 않았다. 칼집을 누르는 왼손과 오른발 뒤꿈치를 보았다. 감지 단계의 해기는 몸 안에서 감각과 자세만 받쳤다. 밖에서는 오직 망치, 못, 돌을 잇는 물리 진동만 움직였다. 심안에 잡힌 큰 흐름이 도창수의 배 아래에서 오른쪽 허리와 어깨를 거쳐 팔로 향했다.

감지뿐이었다. 어디가 약한지 저절로 알려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철은 같은 동작을 스무 번 넘게 보았다. 기가 어깨에 닿기 전, 도창수의 왼쪽 옆구리가 잠깐 비었다.

진철이 반 발 비켰다.

칼집이 코앞을 지나 벽에 박혔다. 돌가루가 뺨을 그었다. 예상했는데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어깨가 스치며 감각이 사라졌다.

도창수는 벽을 차고 몸을 돌렸다. 진철의 몸보다 빨랐다. 두 번째 일격이 옆구리의 오래된 멍을 때렸다. 뼈에 금 가는 소리가 몸 안에서 났고 해기가 흩어졌다. 진철은 우물 테두리에 등을 부딪혔다.

“이게 네가 훔친 무공이냐?”

도창수가 칼을 뽑았다. 날에 아직 검기는 없었으나 내공이 실리자 낮은 떨림이 났다.

진철은 피를 삼키며 공명구를 꺼냈다. 못 세 개가 한 고리에 달린 조악한 물건이었다. 칼을 막을 수도, 사람을 쓰러뜨릴 수도 없었다. 그는 우물 돌에 고리를 대고 짧게 튕겼다.

세 못 중 휘어진 것이 먼저 울었다. 도창수의 칼과 같은 떨림이었다.

그 소리를 표식으로 삼았다. 망치와 북 소리가 더 크게 터졌다. 도창수가 청각을 버리고 내공으로 중심을 잡으려는 순간, 우물물이 안쪽으로 오므라들었다.

둘, 하나, 멈춤.

진철은 칼이 나오기 전에 들어갔다. 빠른 것이 아니라 가장 짧은 길이었다. 칼날 아래로 몸을 낮추고, 왼발은 도창수의 오른발 바깥에 놓았다. 유영보의 첫걸음이 처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았다.

도창수의 팔꿈치가 진철의 등에 떨어졌다. 화상 자국이 찢어지는 통증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품 안쪽의 짧은 정을 뽑아 끝은 칼코등 아래에, 자루 끝은 우물 테두리에 댔다. 칼과 손목과 우물돌 사이에 쇠다리 하나가 놓였다.

휘어진 못이 가장 크게 떠는 순간, 골목의 큰 망치가 우물 받침돌을 쳤다. 돌의 떨림이 정을 지나 칼코등과 도창수의 손목뼈로 올라갔다.

도창수는 손목을 울린 물리 충격에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폈다가 다시 쥐었다. 바로 그 짧은 보정이 그가 외운 ‘둘, 하나, 멈춤’의 마지막 박자와 겹쳤다. 내공을 팔로 보낼 때가 반 박자 빨라졌고, 아직 굳지 않은 손목이 자기 완력을 받았다.

칼이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도창수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저림은 곧 가시겠지만 칼은 이미 우물 아래였다.

진철은 정을 그의 목에 대지 않았다. 대신 우물 옆에 떨어진 칼집을 발로 밀어냈다.

“상납 장부를 내놔.”

“죽이지 않을 거냐?”

“당신이 죽으면 빚도, 위에 있는 사람 이름도 묻히니까.”

도창수의 운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진철은 더 버틸 수 없었다. 정을 놓는 순간 무릎이 꺾였고, 우물 모서리에 가슴이 눌리며 금 갔던 갈비뼈가 끝내 부러졌다. 그 뒤를 주민 열일곱 명이 채웠다. 박석과 유갑은 도창수 쪽이 아니라 벽의 장부 앞에 섰다.

도창수는 칼 없이도 진철을 죽일 수 있었다. 그의 눈이 우물, 벽의 장부, 칼을 내린 박석과 유갑을 차례로 훑었다. 아홉 마을 표찰 앞에서 오래 멎었고, 누이 도정란과 조카 도윤의 이름이 적힌 줄을 보자 턱 근육이 움직였다. 관아와 청하표국의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여기서 주민을 베면 그 빈칸에 무엇이 들어갈지는 분명했다.

우물로 향하던 발이 뒤로 반 치 물러났다.

도창수는 품에서 작은 책을 꺼내 땅에 던졌다.

“내 누이와 조카는 건드리지 마.”

연화가 책을 주웠다. “그 사람들 이름도 빚과 다른 칸에 쓸 거예요.”

운문표국의 깃발이 내려갔다. 주민들은 곡식 자루를 창고로 되돌렸다. 연화는 강호에게 어머니 곁으로 갈지, 먼저 오복댁 농가의 여섯 아이를 만나 볼지 물었다. 강호는 어머니 손을 잡은 채 그 아이들을 만나겠다고 골랐다. 자신이 배울 곳은 보고 나서 정하겠다고 했다. 승리라 부르기에는 진철의 갈비뼈가 부러졌고, 운문표국은 아직 건재했다. 그래도 이날부터 물레골은 한 집씩 뜯기지 않았다.

주민들은 운문표국과의 약조문을 불태우자고 했다. 연화는 말렸다. 불공정한 약조라도 누가 어떤 도장을 찍었는지 남겨야 다음 싸움에서 증거가 된다는 이유였다. 종이는 공동 창고의 쇠궤에 들어갔고, 열쇠 셋은 서로 다른 집이 나눠 가졌다. 누구 한 사람이 마을의 승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 첫 규칙이었다.

약조문 뒤에는 새 규칙을 붙였다. ‘아이를 빚, 보호비, 입문비 대신 넘기지 않는다. 돌아온 아이의 거처와 배움은 본인에게 물어 정한다.’ 북쪽 농가의 여섯 아이 중 둘은 가족 빚이 장부에서 지워지면 돌아가겠다고 했고, 넷은 당분간 오복댁과 살겠다고 보내왔다. 주민들은 두 선택 모두에 곡식과 증인을 붙이기로 했다.

도창수와 부하들은 빈손으로 물러났다. 고개를 넘기 전 그가 한 번 돌아보았다. 원망보다는 자기 뒤에 더 큰 빚쟁이가 온다는 경고에 가까운 눈이었다.

밤에 주민 하나가 상납 장부 속 도정란과 도윤의 거처까지 벽에 붙이자고 했다.

“그걸 알아야 도창수가 다시 못 오지.”

연화는 종이를 떼어 접었다. “이름은 빚과 다른 칸에 쓴다고 약속했어요. 두 사람이 표국에서 쫓겨나면 물레골 곡식 두 말을 먼저 보내고, 거처는 쇠궤 안쪽 기록에만 둡시다.”

주민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하진처럼 돌아오지 못할 아이가 또 생기면 그때도 먹여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강호의 어머니가 자기 몫 한 말을 먼저 내놓자, 다른 한 말을 공동 창고에서 붙이기로 했다. 도창수의 가족을 숨기되 그의 빚은 숨기지 않는 결정이었다.

그날 밤 연화는 진철의 상처를 싸맸다. 오른손으로 붕대를 감고, 손가락 셋 남은 왼손으로 매듭을 눌렀다. 진철이 그 손 위에 손을 얹으려 하자 연화는 약그릇부터 쥐여 주었다.

“오늘 도창수의 단전을 영원히 없앨 수 있었다면 했을 거야?”

진철은 곧바로 대답하려다 멈췄다. 도창수의 힘은 사람을 짓눌렀지만 그의 가족을 표국에 붙들어 두는 유일한 밥줄이기도 했다. 단전을 없애는 순간 피해자는 줄어들 수 있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모르겠어.”

연화는 매듭을 세게 당겼다. 진철이 신음하자 손을 조금 늦췄다.

“그 대답은 장부에 적어 둘게. 나중에 네가 너무 쉽게 안다고 말할 때 보여 주려고.”

***

물레골에서 수백 리 떨어진 무림맹 기록각에서는 같은 밤, 천무령이 보고서 세 장을 나란히 펴고 있었다.

청우관 소란, 염색방 화재, 물레골 경위서. 세 문서에는 서무한과 화상 입은 대장장이, 반복되는 쇳소리가 겹쳤다. 못 세 개와 운기 불응은 도창수의 문서에만 있어 따로 표시했다. 천무령은 겹치는 사실과 한 사람의 진술을 같은 칸에 두지 않았다.

마지막 칸에는 결론 대신 가설이라고 표시한 한 문장을 적었다.

‘동일 인물들이 만든 외부의 물리 자극과 도창수의 운기 불응 사이에 연관이 있을 수 있음. 해기 또는 체외 기운의 개입은 보고만으로 확인할 수 없음.’

그는 물레골이라는 지명에 붉은 실을 매고 조사패를 챙겼다. 동이 트기 전, 기록각의 가장 정확한 감찰관이 남쪽으로 출발했다.
